수미 테리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혐의로 기소된 이후 한국도 비슷한 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국내에서 일고 있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은 지난달 29일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정보위원회 현안 보고에서 한국형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형법 개정 등과 함께 국내에서 외국을 대리해 활동하는 인사들을 규제하기 위한 법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여야도 한국형 FARA 제정의 필요성에는 큰 이견이 없다.
실제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0일 외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개인·기업을 법무부에 등록하도록 규정하는 한국판 FARA를 발의했다. 국정원장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지냈던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발의한 형법 개정안에도 FARA와 유사하게 적국·외국을 위해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수미 테리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정치권에서는 한국형 FARA의 필요성이 제기된 적 있다. 서울의 중식당 ‘동방명주’가 중국을 위한 영향력 공작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해 6월 최재형 당시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의 FARA와 유사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달로 허위 정보 유포와 여론 조작이 갈 수록 더 쉬워지고 있는 만큼, 외국의 대규모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s)을 차단하기 위해 FARA와 유사한 법 제정을 포함한 여러 조치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중국이나 러시아 같으면 미국이 자국의 조력자를 처벌하려 할 때 자신들도 자국 내 미국의 조력자를 찾아내 비슷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며 “한국이 동맹인 미국에 ‘팃포탯(tit for tat·맞대응)’ 전략을 쓸 수는 없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하나의 국가로서 아무런 ‘카드’를 갖고 있지 못한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