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다음달 27일 실시되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적(政敵) 으로 2012년, 2018년 아베와 총재 선거에서 맞붙은 경력이 있는 중진의원입니다.
그는 지난 17~19일 차기 자민당 총재로 적합한 인물을 묻는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25.3%로 1위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이시바의 자민당 총재 도전은 2008년부터 이번이 다섯번째인데, 숙원을 이룰지 주목됩니다.
◇파벌 정치의 희생자, 이번엔 뜻을 이룰까
이시바는 일본 파벌 정치에 희생됐던 비운(悲運) 의 정치가입니다. 저는 이시바가 여론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일본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 특파원 시절, 이시바가 2020년 1월부터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차기 총리 후보 1위에 올라 주목했는데, 파벌 정치에 의해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12, 201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악몽’에 시달렸던 아베가 “이시바는 절대 총재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이시바는 돗토리(鳥取)현 출신의 2세 의원입니다. 게이오대 졸업 후 은행원 생활을 하다가 돗토리현 지사, 자치 대신을 역임한 부친이 사망하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 29세에 처음으로 당선됐습니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첫 입각 후, 후쿠다 내각에서 다시 방위성 대신을 맡아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식견을 넓혔습니다.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을 합사 중인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선 부정적입니다. 우익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나 전력(戰力)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개정엔 아베보다 적극적입니다. 아예 헌법을 고쳐서 군대 보유를 명기하자고 주장합니다.
이시바는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차기 총리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켰습니다. 8개월간 단 한 번도 ‘차기 총리로 적합한 정치인’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시바는 8월 28일 아베의 사임 발표 후 교도통신의 차기 총리 선호도를 묻는 긴급 여론조사에서 34.3%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치고 나갔습니다.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요시히데는 2위(14.3%)로 20%포인트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일본 국민 사이에선 ‘반(反)아베’ 노선의 이시바가 자민당 총재에 이어 총리가 돼 일본 사회를 바꿔줬으면 하는 여론이 크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국민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제 국가라면 차기 대권(大權)은 그의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파벌 간 밀실 협상에 의해 자민당 총재가 결정되고 이어 총리가 되는 관례가 바뀌지 않아 다시 분루(憤淚)를 삼켜야 했습니다. 2012, 201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악몽’에 시달렸던 아베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시바에게 총리직을 물려 줄 수 없다”며 총재 선거에서 측근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되도록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아베 “이시바는 절대 안 된다”
2020년 6월 2일 발표된 FNN(후지뉴스네트워크)과 친(親)아베 성향인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는 아베 총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이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가장 어울리는 정치인’에 이시바가 18.2%로 1위를 차지한 반면 그가 후계자로 밀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1.9%로 최하위였습니다. 당시 일본 내부의 사정을 잘 알던 취재원은 “8년 가까이 집권하던 아베는 2020년 들어서면서 퇴임 시기를 저울질 해왔는데, 이 여론조사를 계기로 정적인 이시바를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는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민당의 최대 파벌로 100명 가까운 의원을 보유한 호소다파는 2020년 8월 31일 긴급 계파모임을 갖고 9월 14일 총재 선거에서 스가를 지지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아소 다로 부총리가 이끄는 니카이파(47명)와 아소파(54명)도 기존 정책 계승을 위해 스가에게 표를 몰아주기로 결정했습니다. 54명을 보유한 다케시타파와 46명의 기시다파도 스가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30여 명의 무파벌 소장파 그룹도 스가에게 입후보를 요청함으로써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파벌주의, 밀실주의 여전한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대부분의 파벌이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을 지지하고 나서자 소속의원 20명의 이시바파 내에서는 그가 입후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신중론이 나왔습니다. “망신당할 가능성이 크니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시바는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 당원 투표에서 아베를 이겼으나 의원 투표에서 역전패한 이시바는 이번 선거가 당원 투표 50%, 의원 투표 50%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시바를 지지하는 의원들과 지방 당원들도 당원 투표 실시를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소규모 파벌을 이끄는 그의 주장은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당원 투표는 하지 않고, 중·참의원 의원 394명과 광역지자체 대표 141명 등 총 535명의 투표로 차기 자민당 총재가 결정됐습니다. 아베의 뜻을 읽은 자민당 5대 파벌 영수(領袖)의 밀약에 의해 스가가 차기 총리로 옹립됐고, 그는 기시다 후미오( 2021년 총재 선거에서 승리)에 이어 최하위인 3위로 탈락했습니다. 그가 얻은 표는 전체 535표 중에서 68표에 불과했습니다. “이시바가 2위를 하면 다음 총재 선거가 위험하다”는 자민당 주류의 인식도 그가 3위를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 여전히 1950년대에 머물러 있는 일본 정치
2020년 8월 28일 아베의 총리 사임 후 2주간 나가타초(永田町)에서 벌어진 일은 일본의 정치가 자민당이 출범하던 1955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파벌주의, 밀실 정치는 여전했습니다. 국민 여론과 민주주의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민당을 지배하는 호소다파 등 5파벌의 영수들은 밀실 회합에서 일찌감치 스가를 차기 총리로 결정했습니다.
9월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와 16일 국회의 총리 선출은 요식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평가처럼 전광석화 같았습니다. “막(幕)이 오르자 연극이 끝나버렸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사석에서 만난 상당수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를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총재 투표에서 3위로 낙선한 이시바는 결국 자신이 만들고 이끌어 온 파벌 스이게쓰카이(水月會) 회장에서 물러났습니다. 12% 득표로 ‘최하위 탈락’한 그는 이시바파 모임에서 “다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책임이 내게 있다”며 사임했습니다. 파벌이 사실상 해체된 것은 물론 그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다시 출마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왔으나, 기시다 총리의 후임에 마땅한 인물이 보이지 않자 출사표를 던진 것입니다.
◇일본 국민은 왜 파벌 정치에 반기를 안 드나
2020년 도쿄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 낙마를 지켜보면서 가졌던 궁금증은 일본 국민은 왜 여론과 관계없이 움직이는 파벌정치를 용인하느냐는 것입니다. 일본 국민은 파벌 정치에 의해 스가 요시히데가 사실상 밀실에서 차기 총리로 결정된 데 대해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가 총리 취임 후 처음 실시된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스가 내각은 일본 국민으로부터 약 65% 이상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는 스가 내각 지지율이 74%로 정권 출범 당시를 기준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80%), 하토야마 유키오(75%) 내각에 이어 역대 3위를 기록했습니다.
한 달 만에 일본사회의 여론이 어떻게 이렇게 급변할 수 있는지, 일본인은 정치는 유력 파벌이 결정하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새삼 한일 양국의 정치, 국민 차이를 다시 절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도 과연 국민여론과 별도로 움직일 지, 그것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