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1945년 8·15 광복 직후 한국으로 귀국하는 재일 한국인 수천 명을 태우고 부산항으로 가던 중 해상폭침한 우키시마(浮島)호 승선자 명부 일부를 입수했다고 5일 밝혔다. 우키시마호가 일본 교토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79년 만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보관 중이던 우키시마호 관련 명부 75건 중 내부 조사가 끝난 19건을 이날 오후 4시쯤 주일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 여기에는 요코스카 지방복원부가 우키시마호 침몰 전후에 작성한 ‘우키시마호 조선인 명부', ‘승선자 명부의 건 보고', ‘우키시마호 조난자 명부' 등이 포함돼 있다.
후생노동성이 우키시마호 침몰 전후에 작성된 여러 종류의 명부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5월 처음 공개됐다. 그후 우리 정부의 명부 제공 요청에 따라 한·일 간 교섭이 시작됐는데, 6~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성사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이 명부를 우키시마호 폭침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활용하고, 나머지 명부도 일본 정부의 내부 조사가 끝나는대로 제공 받을 예정이다.
일본 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와 그 가족 등 수천 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이틀 후 교토부 마이즈루 앞바다에 정박했다가, 선체 하부에서 의문의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폭침 당시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가 기뢰를 건드려 폭발했으며 한국인 노동자 3725명 중 524명, 일본인 승무원 255명 중 25명이 사망하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전에 승선을 신청한 사람들의 명단에 기초한 것으로, 실제 탑승자는 훨씬 더 많았다는 생존자 증언이 있다.
폭침 이유에 대해서도 생존자들은 마이즈루 앞바다에 배가 멈추고, 일부 일본 승조원이 구명정을 타고 해안으로 향한 뒤 폭발이 일어났다며 의문을 제기해 왔다. 부산행을 꺼렸던 일본 해군 승조원들이 폭발물을 이용해 고의로 침몰시킨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오랜 세월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를 제공해 달라는 생존자와 유족들의 요구에도 ‘승선시 작성해 배에 비치한 명부'는 침몰로 사라졌다고 주장해 왔다. 우키시마호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그런 이유로 명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5월 후생노동성은 한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의 정보 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오미나토 해군 시설부, 일본통운 오미나토 지점, 오미나토 지방복원국 등이 작성한 승선명부를 공개했다. 다만 “사고 후 조사를 거쳐 작성된 명부”이기 때문에 승선시 작성된 명부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5월 말 미야자키 마사히사 후생노동성 부대신(차관)은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 출석해 “승선자 등의 ‘명부’라고 이름 붙은 자료가 70개 정도 있다. 자세히 조사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우리 정부가 이 명부들의 제공을 요청한 것이 이번에 성사됐다.
정부는 일본 측이 제공한 명부에 희생자들의 개인정보가 많이 포함돼 있다며, 유족 등 관련 국내 법령에 따라 정보를 열람하거나 제공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에게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강제동원 피해자 위로금 지급 심사 과정에서 근거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지급 신청을 기각 당했던 희생자 유족 등이 이 명부를 이용해 재심의와 위로금 지급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