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용(82) 우키시마 유족회 회장은 일본 정부가 1945년 8·15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한국인을 태우고 부산으로 가던 중 폭침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일부를 우리 외교부에 전달한 5일 “명부가 오는 데 79년이나 걸렸다. 진상 규명이 너무 늦어졌다”고 말했다. 이날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에 징용돼 갔다‘는 사실만 알고,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는 피해자 가족도 많다. 빨리 명단을 확인해 유족들에게 소식을 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1945년 1월쯤 일본에 징용돼 갔다가 7개월 후 우키시마호에서 숨진 고(故) 한석희씨의 외아들이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1970년대부터 일본 마이즈루 앞바다에 잠들어 있을 선친의 유해를 찾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91년 우키시마호 피해자 유족 가운데 처음으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 회장은 “1991년 소송 당시 일본 정부에 ‘승선자 명부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배가 침몰돼서 없다’고 했다. 그런데 올 들어 일본 언론인과 야당이 정보 공개 청구를 하니 75건 정도 명부가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선친의 경우, 같은 경남 거창 출신의 인척이 우키시마호에서 생존한 뒤 우리 집을 찾아와 ‘그 배에 함께 있었는데 나오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알려줘 희생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면서 “젊은 나이에 자식도 남기지 못하고 연고 없는 곳에 끌려갔던 징용 피해자들 중에 ‘무명의 희생자’가 얼마나 많겠나”라고 말했다.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후, 일본 정부는 한국인 노동자 3725명 중 52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 회장은 “당시 일본의 한 잡지에 게재된 한국인 사망자 524명 명단에는 선친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며 “실제로 배에 탑승한 사람도, 한국인 사망자도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 회장은 마이즈루 앞바다와 인근에 묻힌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의 유골을 한·일 정부가 발굴해 유족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말했다. “내가 벌써 아버지 곁에 갈 나이가 됐다. 저승에서 선친을 뵈면 ‘유골을 찾아 한국 땅에 모셔놓고 왔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