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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 박물관을 지난 7일 찾았습니다. 지난 7개월간 5번째 방문입니다. 워낙 넓은데다 때가 되면 바뀌는 전시실들이 있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찾습니다.
이날도 호기심과 감성을 자극하는 전시 작품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저의 마음을 잡아끈 것은 박물관 2층 특별 전시실 ‘불을 끄다 : 우리의 밤하늘을 되찾다(Lights Out: Recovering Our Night Sky)의 한 코너인 ‘이주 : 새들 (Migratory : Birds)’ 코너였습니다.
9·11 테러를 추모하기 위해 테러 발생지였던 맨해튼 남부 세계무역센터(WTC) 인근에서 쏘아 올리는 88개의 고강도 광선인 ‘빛의 헌정(Tribute in light)’이 가을철을 맞아 이주 중인 철새들을 방해해 추락사하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까만 밤 테러 발생 부지에서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 푸른빛 광선과 그 안팎에 불나방처럼 아래부터 높은 곳까지 달라붙어 혼란스럽게 비행하는 철새들의 사진, 그리고 그렇게 날다 지쳐 수백m 아래로 떨어져 콘크리트 바닥에 죽어 있는 노란엉덩이딱새(yellow-rumped warbler)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미국은 매년 9월 11일마다 2001년 9·11테러를 기억하고 2977명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무역센터 인근 배터리 파킹 가라지 옥상에서 해 질 녘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수직 탐조등을 하늘을 향해 쏩니다. 크게 두 개의 빛 기둥이 생기는데, 한 기둥마다 44개의 탐조등, 즉 총 88개의 탐조등이 발사됩니다. 무역센터의 트윈(쌍둥이) 타워 형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고 발생 이듬해 단발성으로 ‘빛의 헌정’을 했는데, 지금까지 매년 하게 됐다고 합니다. 22년간 지속하다 보니 이제는 9월 11일이 되면 이 ‘빛의 헌정’을 보고자 맨해튼을 찾는 인파가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빛의 헌정’을 시작하면서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강력하고 거대한 인공 불빛 기둥으로 인해 9월 중순으로 가을을 맞아 이주하는 무수히 많은 철새가 가던 길을 잃고 빛에 매료돼 불빛 기둥 주위를 계속 맴돌다 탈진해 추락사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빛의 헌정’이 끝나는 새벽녘 무역센터 주변을 걷다 보면 차도와 인도 곳곳에 손바닥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의 철새들이 툭툭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조명은 맑은 날 밤에는 60마일(97km)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강렬합니다. 뉴욕시 전역과 뉴저지 북부와 롱아일랜드 교외 지역 대부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코네티컷 주 페어필드 카운티와 뉴욕의 웨스트체스터, 오렌지, 록랜드 카운티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이 불빛은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답거나 황홀하게 보일 수 있고, 그 의미를 생각하면 숙연해지고 비장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마일 고도로 비행하는 새들은 이 빛으로 인해 방향 감각을 상실하거나 빛에 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져 가던 길에서 이탈해 그 빛의 기둥에 머물며 사실상 갇혀버리는 증상을 겪게 됩니다. 대략 100만 마리의 새가 간밤에 맨해튼 상공을 날아가는데 이들이 예기치 못하게 ‘빛 테러’ ‘빛 공해’의 희생물이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수년 전부터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빛 기둥에 새들이 약 1000마리 몰린 게 식별되면 약 20분간 조명을 꺼서 빛 기둥에 갇힌 새들이 ‘탈출’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조치로 추락하는 새가 많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멀고 먼 이주 비행을 하는 철새들이 간밤에 빛 기둥을 향해 날아가 맴도는 ‘불필요한’ 비행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바람에 당장 무역센터 주변에서는 낙하하지 않고 다시 가던 길로 복귀하지만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 11일에도 맨해튼 남부 무역센터 부근에서는 두 빛 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았습니다. 자연사 박물관 전시물로 안타까운 철새들의 추락사 현상을 알고 나니 이날 ‘빛의 헌정’에 추모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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