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지난주 25회 ‘서울 온 체니 부통령, 미 대사관 이전 문제에 불만 토로’에서 계속됩니다>
2004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딕 체니 미 부통령이 방한, 주한미국대사관 이전 문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돌아간 후의 일입니다.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 Z씨와 만나 한미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맥주를 나누며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체니 부통령이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만난 자리에서 미 대사관 부지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대사관 이전 문제를 꺼냈습니다.
그는 “미 대사관 부지 문제는 한미관계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지한파 외교관이었는데, “대사관 부지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슬프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화가 나 있다”며 오른손으로 탁자를 내리쳤습니다. 앞에 앉아 있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주한미대사관이 이전해야 하는 이유로 “너무 낡고, 비좁고, 숙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유능한 외교관들이 한국 근무를 꺼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 대사관이 모두 사대문 안에 있는데 미국대사관만 멀리 떨어져 나가야 하느냐”고 항의하듯 말했습니다.
미국 외교관이 한국 기자 앞에서 이 같은 행동을 할 정도로 미국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총리가 2004년 5월 4일 주한미대사관 신축 부지가 용산 미군기지 일부인 ‘캠프 코이너’로 정해졌다고 발표하자 모린 코맥 주한미대사관 공보관이 “한국정부의 입장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요지의 두 문장짜리 성명을 발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미국이 ‘2류’ 부지로 판정 내린 캠프 코이너안을 기정사실화하며 발표한 것은 고육지책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 이곳을 내켜 하지 않는 것을 알지만, 더 이상 부지 선정을 늦추는 것보다는 차선책이라도 결정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체니 미 부통령이 방한 중 대사관 문제를 집중 거론한 것이 정부의 최종판단에 영향을 미쳤던 겁니다.
◇ 미국, 대사관저 인근의 옛 경기여고 부지 선호
미국이 원래 주한미대사관 이전 부지로 점찍은 곳은 옛 경기여고 터입니다. 미국은 정동 미 대사관저 옆의 공사관저와 맞붙은 이곳(덕수초등학교 맞은편)을 선호했습니다. 여기에 대사관을 만들어 대사관저-공사관저-대사관으로 연결되는 ‘아메리카 타운’을 만들 예정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당시 주한미대사가 서울시장과 재산 교환 양해각서를 맺었습니다. 미국은 을지로 롯데호텔 맞은 편의 미 문화원 부지와 경복궁 옆의 송현동 땅을 내 주는 대신 옛 경기여고 터를 소유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지하 2층, 지상 15층, 연건평 5만5000 ㎡ 규모의 대사관 건물을 세운다는 계획을 만들었습니다. 도쿄 중심가 록폰기의 주일미대사관 숙소처럼 직원 아파트와 군인 숙소도 건립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가 되고 한국의 국력이 신장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평등한 한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주한미대사관의 정동 이전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효순-미순 사건을 계기로 반미(反美) 기류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반미 정서를 활용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된 후 “역사적 가치가 큰 정동 일대로 미대사관을 옮기는 것은 문제가 크다”는 지적들이 나왔습니다. ‘덕수궁 미 대사관 신축을 반대하는 시민모임’ 등의 활동도 활발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문화재연구원은 지표조사 후, 미대사관 신축 예정지가 옛 궁궐터이므로 보존, 복원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2003년 12월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사안이 중대하다”며 전체회의에 회부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미 대사관이 옛 경기여고 터로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음을 의미했습니다. (결국 2005년 1월 문화재위원회는 주한미대사관 신축 예정지 등 총 7800여 평을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보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은 이런 과정을 잘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17대 총선을 통해 반미 성향의 ‘386′ 운동권이 대거 국회에 진출, 미대사관이 정동으로 이전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만난 미 정부 고위 관계자 Z씨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만약, 한국정부가 서울이 아니라 수원, 인천에 미국 대사관을 지으라면 얼마든지 그곳에 짓겠다”고도 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큰 배신감을 느낀 듯 했습니다.
◇ 서울시, 2021년에야 주한미대사관 지을 수 있도록 조치
미국은 우리 정부가 내놓은 캠프 코이너 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을 뿐, 이를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은 용산기지를 반환한다고 하면서 한편에 주한미대사관이 들어서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것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주한미대사관 이전 문제는 기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 6월 서울시로부터 주한미국대사관 이전 관련, 중요한 뉴스가 나왔습니다.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가 용산구 주한미대사관 건축과 관련된 결정을 하자 “주한미대사관이 1968년부터 사용한 현재의 광화문 청사를 떠나 용산공원 북측 옛 용산미군기지 내 캠프 코이너 부지에 자리 잡을 예정”이라고 발표한 겁니다.
서울시는 주한미대사관 이전 부지를 녹지지역에서 용적률 200%의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 높이 55m 이하, 최고 12층 높이의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울시는 2011년 주한미대사관 건축과 관련한 양해각서를 맺고 대사관 이전을 위한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추진해 왔는데 10년만에 이 같은 결정이 나왔습니다.
서울시는 2021년 용도변경을 해 주면서 신청사 착공이 건축허가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약 2년 후 이뤄질 전망이라고 했으나 3년이 다 돼 가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주한미대사관은 2030년 이전을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미 중앙정부에서 이전에 필요한 예산 배정이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대사관 직원 숙소 건립 문제 또한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대사관 이전에 이렇게 소극적인 배경에는 “사대문 밖으로 밀려나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됐다”는 불만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에 위안이라면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했다는 겁니다. 미 대사관이 캠프 코이너 부지에 건립되면 주요국 대사관 중에서는 대통령실과 가장 가까운 곳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미 대사관이 사대문 밖으로 밀려났다는 불만은 사라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다음 정부에서도 용산 대통령실이 계속된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 주중미대사관은 4년만에 완공해 위용 자랑
미국의 고위 관계자 Z씨가 대사관 문제에서 한국의 ‘비협조’를 중국과 비교한 것은 되새겨볼만한 대목입니다. Z씨는 제게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보라. 중국은 미중 우호관계를 고려해서 베이징의 가장 좋은 위치에 최신식의 건물을 짓도록 했다. 곧 2~3년내에 들어서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주한미대사관과 비슷한 시기에 대사관 신축 논의를 시작했던 주중대사관은 2004년 베이징 한복판의 차오양(朝陽)구에 착공돼 2008년 완공됐습니다.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개관식에 참석, 새로운 대사관 건립을 축하하기도 했습니다. 주중미대사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곳은 대지 면적이 10에이커이고, 총 4억 3400만 달러의 건축비가 들었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두 번째로 큰 해외 건축 프로젝트로 동서양 디자인 전통을 조화롭게 결합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소개합니다. 주중미대사관이 베이징의 요충지에 신속하게 건립돼 위용을 자랑하는 것은 아직 이전 시기조차 확정하지 못한 주한미대사관과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S.
1. 2004년 탁자를 내리친 미국 외교관 Z씨의 발언 중 또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에겐 일본이 있다는 것을 한국이 잘 모르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한국은, 미군이 한국 국민이 원하지 않아도 남아있으려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완벽한 착각이다. 한국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우린 언제라도 한국을 떠난다. 한미동맹이 깨지면 우리에게도 약간의 손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이 원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하지는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지만, 저는 이 말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격(格)을 나눠서 생각하는 미국의 본심을 무심결에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보다는 일본을 더 중시하는 미국의 입장은 여전하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워싱턴과 도쿄에서 이를 절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최근에 저는 ‘1950 애치슨 라인, 2025 트럼프 라인’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태평로> 칼럼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주한 미군 존재 의의를 일관되게 폄하하는 트럼프의 발언을 듣다 보면 1950년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을 떠올리게 된다. 한반도를 김일성의 동족살해(同族殺害) 남침으로 이끈 애치슨 라인의 함의는 간단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반도를 버려도 일본이 태평양의 방파제처럼 버티고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이 20년 전의 개발도상국에서 G7 진입을 거론할 정도로 덩치가 커진 것은 분명합니다. 주한미군이 일부 감축된다고 해도 큰 영향이 없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 북한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숙명이 최근 더 무겁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20년 전 Z씨의 발언은 여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