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발사에 성공했지만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능력을 과시하고 나섰다. 김여정은 지난 24일 담화에서 미국 핵추진잠수함(SSN) 버몬트함의 군수 적재와 휴식을 위한 부산 작전기지 입항에 대해 “국가수반의 직속 독립정보기관인 항공우주정찰소가 ‘이상물체’(버몬트함)가 23일 10시 3분 10초에 부산항 부두에 나타난 것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23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미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버몬트함이 입항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김여정은 “미국의 전략자산들은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에서 자기의 안식처를 찾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는 한국의 모든 항과 군사기지들이 안전한 곳이 못된다는 사실을 계속 알리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버몬트함 입항 장면을 포착한 시점을 분초까지 공개하면서 남측 주요 군사시설을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실제로 버몬트함은 10시쯤 부산 부두에 접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만리경-1호가 사실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리 군 당국 평가와는 다른 주장이다. 지난 2월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만리경-1호가 궤도를 돌고 있다는 신호는 정상적으로 수신된다면서도 “일 없이 돌고 있다”며 군사정찰위성으로서 임무는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만 김여정 주장과 달리 북한은 버몬트함을 찍은 위성 사진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노동신문 뉴스1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버몬트함 입항 시기를 추정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감시정찰 능력이 있다는 북한 주장은 ‘블러핑’(허풍)이라는 것이다. 버몬트함 입항은 국내 언론 보도로 23일 오전 10시 45분쯤 처음 알려졌다. 부산작전기지로 들어오는 미 전력 대부분이 오전 9~10시 사이에 입항하는 만큼 이를 토대로 역산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버몬트함은 9시 30분쯤 부산작전기지에 진입해 10시쯤 접안했는데 북측은 이런 구체적 정황은 언급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분초(分秒)까지 명시하며 구체적으로 시점을 밝혔지만 북한이 자체 감시자산을 통해 입항을 파악했다면 우리 언론 보도 전에 선제적으로 밝혔거나 위성 사진을 함께 공개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군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북한 위성이 정보를 전달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있다”고 전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위성을 통해 미군 잠수함을 포착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고정간첩이나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정보 등을 통해 시간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해 6월 15일 전북 군산 어청도 서쪽 200여km 해역에서 북한 우주 발사체(만리경 1호) 일부를 인양했다고 발표했다. /합동참모본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러시아 감시자산을 통해 입항 시점을 파악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현재까지 북·러 군사협력이 위성정보 공유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 군은 지난해 5월 북한이 발사에 실패했던 만리경-1호를 인양했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은 지상 관측을 위해 상용 디지털카메라를 탑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구글 어스’보다도 해상도가 떨어지는 수준이다. 당시 합참은 “정찰위성으로서 군사적 효용이 없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김여정은 핵추진잠수함(SSN)인 버몬트함을 ‘전략자산’이라고 부르며 마치 핵공격이 가능한 핵전략잠수함(SSBN)이라고 주장했다. 군 관계자는 “핵추진잠수함(SSN)을 마치 핵전략잠수함(SSBN)과 같은 것으로 호도해 긴장을 조성하고 차기 도발 명분을 축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