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교전 중인 레바논에 체류 중이던 교민 97명이 정부가 투입한 군 수송기를 타고 5일 국내에 도착했다.
이들이 탑승한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는 이날 낮 12시 50분쯤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했다. 시그너스는 외교부 신속대응팀과 군 의무요원 등을 태우고 지난 3일 김해공항에서 출발, 4일 오전(현지 시각)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해 교민들을 태웠고 당일 오후 귀환길에 올랐다.
정부는 이날 오전 7시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군사 충돌 상황으로 우리 국민이 민간 항공편을 통해 출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교부와 국방부는 신속히 군 수송기 및 신속대응팀을 레바논에 파견해 우리 국민의 안전한 귀국을 지원했다”며 “군 수송기는 (윤 대통령의) 투입 지시 바로 다음 날인 3일 한국을 출발해 4일 오전(현지시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도착했고 4일 오후 베이루트를 출발해 곧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일 새벽 이스라엘은 18년 만에 레바논 남부 국경 지역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작년 10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하면서 1년째 이어지고 있는 중동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레바논 현지에는 아이들을 포함해 우리 교민 130여명이 체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지에서 항공편을 구하기 힘들어 출국에 애를 먹고 있던 상황으로 전해졌다.
이에 정부는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시그너스(KC-330)’를 현지에 급파했다. KC-330은 300여명의 인원과 47t 가량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철수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외교부 직원 5명도 신속대응팀으로 함께 파견됐다. 미국과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캐나다 등 각국 정부 역시 레바논 상황이 악화되면서 최근 전세기와 수송기 등을 동원해 현지 자국민을 철수시키고 있다.
이날 군 수송기를 통해 귀국한 97명 중에는 우리 교민 96명과 레바논 국적의 교민 가족 1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30여명의 교민은 종교적·개인적 이유 등으로 현지에 남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개인의 의사에 반해 철수를 강제할 수는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외교부는 작년 10월 레바논에 대해 3단계 여행경보(출국권고)를 발령한 상태다. 여행경보 4단계에서 여권 사용이 금지된다. 박일 주레바논 한국 대사를 포함한 20여명의 대사관 직원들도 잔류했다.
이번 우리 군 수송기 철수에는 일본 등 우방국 국민은 탑승하지 않았다. 일본도 자체적으로 자국민 철수 조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충돌이 격화됐던 작년 10월에도 정부는 군 수송기를 투입해 이스라엘에 체류 중이던 163명의 우리 국민을 귀국시켰다. 당시에는 현지의 일본인 51명과 싱가포르인 6명도 인도적 차원에서 함께 탑승시킨 적이 있다. 며칠 뒤 일본 정부 역시 자위대 수송기를 이스라엘에 투입해 체류 중이던 일본 국민 60여명을 귀국시켰는데 우리 정부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한국인 18명도 함께 탑승시켜 철수를 지원했다.
앞서 정부는 작년 4월 군벌 간 무력 충돌이 벌어졌던 수단의 교민 28명을 특전사 등을 투입해 군 수송기로 철수시키는 ‘프라미스(Promise·약속) 작전’을, 2021년에는 탈레반에 함락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들과 가족 390여명을 구출하는 ‘미라클(Miracle·기적) 작전’을 수행했다.
외교부 대변인실은 이날 “조태열 외교장관 또한 압달라 라쉬드 부 하빕 레바논 외교장관에게 직접 문자메시지를 보내 우리 국민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레바논 정부의 협조를 당부했다”며 “하빕 외교장관은 조 장관의 요청을 잘 알겠다고 하고, 대한민국이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peace loving country)로서 중동정세 안정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