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지난주 막전막후 <28회> [남관표·장하성 몰아붙여 사드 ‘3불’ 부인 이끌어내다]에서 계속됩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4/10/05/YQYSJPQGNZADDN7N436FHBZK5A/)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3불 합의’를 주도했던 남관표 주일 대사가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3불합의가 약속도 합의도 아니다”라고 밝히자 그 파장은 컸습니다. 그동안 3불 합의에 숱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고위 인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나선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중국 외교부의 자오리젠 대변인은 국감 다음날인 2020년 10월 22일 “중한 양국은 2017년 10월 단계적으로 사드 문제를 처리한다는 합의를 달성했다”며 “양국은 당시 양국관계를 다시 개선과 발전의 정상궤도로 돌려놓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양국의 합의 과정은 매우 분명하고, 양국 공동 이익에 부합했다”며 “중국의 관련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중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서도 “3불 합의를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YONHAP PHOTO-2739> 밝은 표정의 문 대통령과 신임대사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5월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신임 대사들과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남관표 신임 주일본대사, 문 대통령, 장하성 신임 주중국대사. 2019.5.3 xyz@yna.co.kr/2019-05-03 15:28:49/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남 대사는 왜 국감에서 사드 3불 부인했을까

당시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던 제가 가졌던 의문은 왜 남 대사가 야당이 주도하는 국감에서 지난 회에 전해드린 것처럼 적극적으로 3불 합의를 부인했느냐는 것입니다. 야당이었던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감에서 남 대사를 몰아붙인 것이 발단이었지만, 그는 이례적으로 “합의한 것이 없다. 중국의 세 가지 우려와 관련해서 과거와 그 협상을 하는 협상 당시까지 우리가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 공개된 입장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준 것이 전부”라는 등의 얘기를 합니다. 이 때문에 국민의 힘 조태용 의원이 3불을 지킬 이유가 없다는 데 방점을 찍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셔서 속기록에 잘 기록되고, 이 사실은 국민께도 많이 알려져야 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는 당시 남 대사가 처했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남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2019년 5월 장하성 주중대사와 함께 주일대사로 발탁돼 한때 도쿄 주변에서는 “차기 장관이 될 것”이라는 하마평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남 대사는 도쿄 부임 후, 한일관계가 더 악화되면서 본인이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입안했던 대일정책의 부작용을 감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던 게 남 대사 부임 첫 해인 2019년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입니다. 당시는 코로나 사태 전이어서 국회의원들이 방일, 대면 국정감사가 열렸는데 이때 그가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뼈저리게 느낀 일본 상황을 비교적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양심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적지 않게 있다. 간혹 그분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서 발표되기도 하고 단체적 의사 표시도 하는데 비중으로 봐서는 굉장히 소외된 감이 있어서 상당히 안타깝다.”

남 대사는 30년 넘는 공무원 생활 동안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평을 들어왔는데 ‘굉장히’ ‘상당히’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일본내 친한(親韓) 세력이 겪는 어려움을 묘사한 겁니다. 그가 대사로 활동하면서 청와대와 입장 차가커지고 있다는 얘기가 자주 흘러 대사관 밖으로 흘러 나왔습니다. 아베 신조 내각이 한일간 역사적, 정치적 갈등에 대해 사상 초유의 경제제재를 취한 것은 분명 큰 문제였지만, 문재인 정권이 반일을 내세우는 바람에 일본에서 한국 외교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가 한일관계의 위험성을 느끼고 청와대에 문 대통령 독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관료 생활을 오래 한 남 대사는 청와대와 잘 소통되지 않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 수 있었을 겁니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 즈음에 자신의 공직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3불 얘기가 나오자 이를 해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적극 부인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추정했습니다. 국감 이후 남 대사의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청와대, 남 대사 부임 1년 반만에 경질 통보

아니나 다를까, 문 대통령은 남 대사의 3불 부인 한 달 후 남 대사를 경질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11월 23일 주일 대사에 강창일 전 국회의원을 내정, 이를 발표했습니다. 국가안보실 2차장을 지낸 남 대사가 부임한 지 불과 1년 반도 안 됐을 때입니다.

청와대는 “강창일 내정자는 일본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학계에서 오랜기간 일본을 연구한 역사학자다. 4선 경력 정치인으로 의정활동 기간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등을 역임한 일본통”이라고 했습니다. 또 “일본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 오랜기간 쌓아온 고위급 네트워크를 통해 경색된 한일관계 실타래를 풀고 한일 양국 발전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청와대의 강 대사 내정 성명에는 남 대사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 대사가 한일관계 해법 차이로 문 대통령의 신임을 잃고 있었는데, 3불 문제가 부각되자 교체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2020년 10월 21일 외교통위원회의 주일대사관, 주중대사관에 대한 화상 국정감사에서 남관표 주일대사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20.10.21 국회사진기자단

◇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의 외교부 비주류

여기서 ‘외교관 남관표’의 이력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9년 5월 도쿄에 부임한 남 대사는 2004년이 외교관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경기고를 졸업 후,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외무고시 12회에 합격하면서 주목받았지만 눈에 띄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 주류였던 외교부에서 비주류에 더 가까운 편이었습니다.

외교부 조약국 심의관이던 남 대사는 2004년 3월 ‘세력 교체’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혁신 기획관으로 발탁됐습니다. 같은 해 11월엔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파견 나갔습니다. 당시 외교부를 뒤흔들었던 ‘동맹파와 자주파’ 논란에서 자주파로 분류됐습니다. 청와대에서 13년 뒤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문재인 민정수석 비서관을 만납니다. 1년간 ‘문 수석’을 모시고 일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대한민국 주류 세력의 상징과도 같았던 KS 출신이면서도 비교적 진보 성향을 보인 그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문 수석은 이후 청와대를 떠나서도 외교관 남관표를 잊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탄핵’ 바람을 타고 2017년 5월 청와대에 입성한 문재인 대통령은 남 대사를 즉각 기용했습니다. 외교안보수석 비서관에서 이름을 바꾼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했습니다. 남 대사가 차관보급 이상의 외교부 요직을 맡았던 경험이 없었기에 정치권에서 “남관표가 누구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격이었습니다.

일본 측은 문 대통령과 남 대사의 이런 오래된 인연에 주목하며 그의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1992년부터 2년 8개월간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경력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남 대사가 부임 하루 만인 2019년 5월 10일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을 만난 데 이어 13일엔 고노 다로 외상을 신속하게 면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당시 아베 내각의 한 관계자는 제게 “남 대사는 어쨌든 문 대통령 측근 아니냐. 최소한 일본의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하는 역할은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자국이 한국에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의 설치 시한(18일)까지 한국이 답변하지 않았다며 19일 일본 외무성에 초치된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오른쪽)가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당시 한국에 대한 도쿄의 공기(空氣)는 남 대사가 서울에서 전문을 통해 느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본 측은 한국이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징용 피해자들이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에 착수하자 매일같이 대응 조치를 점검했습니다.

우리 측에서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며 ‘제3자론’을 내세우는 데 대해선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저는 양국 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남 대사가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을 잇달아 요직에 발탁한 것만 생각해 국가안보실 2차장 때의 편향된 정책을 고집하다가는 나중에 대통령이 더 큰 비판을 받게 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줄곧 취해 온 ‘혐일(嫌日) 외교’에서 벗어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습니다.

◇민단 행사에 일본 국회의원 19명 왔으나 남 대사는 불참

남 대사는 문 대통령의 신임을 잃고, 경질 발표가 나자 더 이상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바뀌어 2021년 1월 12일 도쿄 제국호텔에서 민단 신년회가 열렸습니다. 코로나 긴급 사태 상황이었지만 일본 측에서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 일본의 여야 중진 의원 19명을 포함, 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신년회엔 문재인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도 없었고 남 대사 대신에 주일 정무 공사가 참석했습니다. 재일교포를 대표하는 민단 신년회 행사에 일본 의원들이 20명 가까이 참석했는데, 주일대사가 불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당시 남 대사를 대신해 참석한 정무공사가 굳은 얼굴로 민망해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편, 남 대사의 3불 부인을 계기로 우리 정부 안팎에서는 이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출범하자마자 3불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습니다. 2022년 8월 기자들을 만난 주중 한국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전 정부 5년간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지 못했다”며 사드 3불을 거론했습니다.

그는 사드 3불은 “전 정부가 합의도 아니고 정책도 아니라고 (남관표 대사가) 이미 밝혔다”며 “새 정부가 챙겨야 할 옛날 장부(帳簿)가 있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윤석열 정부 발족 후 “새 관리가 옛 장부(사드 3불 합의)를 외면할 수 없다”며 압박한 것에 대해 반박한 것입니다. 이 관계자는 3불을 통해 양국간 갈등을 잠정 봉합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우리가 받은 게 없는 데 봉합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아울러 ”3불처럼 자국의 안보에 대해 제3국에 ‘미래에 무엇을 안 한다’고 약속하는 게 합리적인가”라고도 반문했습니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3불 문제를 초기에 정리할 수 있었던 데는 국정감사에서 남 대사가 부인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S.

1. 남관표 대사의 3불 부인에 대해 당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여당은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외교부 안팎에서는 호응을 얻었습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남 대사가 결자해지로 이 문제를 정리했다”고 했습니다. 남 대사의 외무고시 선배인 S씨는 최근 “남 대사가 공직에 있을 때 뒤늦게나마 3불을 부인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그렇지 않았다면 퇴임 후에도 평생 멍에를 쓰고 살았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