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규모 파병을 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북·러 관계는 지난 6월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통해 군사동맹, 더 나아가 ‘혈맹(血盟)’으로 진화했음이 명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전쟁을 벌일 시 러시아군이 개입할 가능성도 커졌다. 북·러가 한미상호안보방위조약 이상의 강력한 군사동맹 성격을 갖춰 나가며 동북아 질서가 크게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내에서는 “대러시아 정책을 전면 조정할 때가 왔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국이 그간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뒤집을지도 주목된다.
북·러 조약의 핵심은 ‘침공받을 경우 지체 없이 군사원조를 한다’는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다. 조약 체결 당시에는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지만, 이번 파병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군사동맹임이 입증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할 때도 이 조약을 근거로 러시아군이 북 측에 파병될 것”이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북한과 조약을 체결한 후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가 아는 한 한국은 북한에 대한 침략 계획이 없기 때문에 우리(러시아·북한)의 협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에 북한이 참전한 만큼, 북한의 남침 도발 시에도 러시아군의 개입 가능성은 커진 것이다. 북·러 조약은 다음 달 초 러시아 하원에서 비준될 것으로 보이는데 러시아 측은 최근 “북한에 대한 침략 행위가 일어나면 우리의 법에 따라, 그리고 북한의 법에 따라 필요한 모든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며 군사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주장하며 최근 남북 육로 단절 및 ‘요새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이번 파병을 위한 준비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입장에서는 대규모 파병을 하게 될 경우 그만큼 군사력이 줄어들 테니 ‘남북 육로 단절’ ‘요새화’ 등에 나서며 여건 조성에 나섰을 수 있다”며 “돌발 상황 시 러시아가 개입한다는 확신도 있을 테니 대담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합참 관계자는 “특수전 부대가 우크라이나로 파병되는 만큼 대남 특수부대 도발 가능성은 단기간은 줄어들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실전 경험 축적을 통해 우리 군이 상대하기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이번 파병을 통해 북한군이 러시아 장비와 군사기술을 반대급부로 받으면서 ‘군 현대화’를 이룰 가능성이 우려된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이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군 현대화에 성공했던 상황이 북한군에서도 그대로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우리 군은 재래식 군사력은 북한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데, 재래식 무기 우위도 상당 부분 잃게 되면 북핵 억지력은 지금보다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군사기술 및 장비가 북한에 넘어가는 상황도 우려된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나 군사정찰위성 등 민감한 핵심 군사기술을 넘겨받을 공산이 커진 것이다. 러시아의 핵추진 잠수함 제조 기술 및 소형 원자로 기술도 북한이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군 관계자는 “현재 북한 잠수함은 우리 재래식 잠수함과 경쟁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후됐고 기술력이 떨어지지만 핵추진 잠수함을 확보하게 될 경우 일거에 판세가 역전될 수 있다”고 했다.
방공망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북한은 최근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에서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이 역시 러시아가 지원할 경우 상당 부분 해결이 가능할 전망이다. 러시아의 S-400 방공포대는 F-35A 등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요격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S-400을 북한에 수출하거나 참전 대가로 넘길 경우 우리 군이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공중 전력이 평양 등 북한 심장부를 타격하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