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파병에 나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도 요동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러시아에 무기·병력을 보내는 ‘베팅’을 통해 상당한 경제·군사적 반대급부를 챙기고, 장기적으로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을 확약받을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보수·진보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담당하거나 조언한 전문가 4인에게 북한 파병의 의미와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 등을 물었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북한의 이번 파병 결정은 김정은이 러시아에 완전히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는 뜻”이라며 “그동안 중국에 대북 제재 풀어달라 호소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안 나오자 러시아를 잡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 전 수석은 20일 본지 통화에서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이를 규탄했던 유엔총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5개 국가 중 하나였다”며 “이후 러시아에 포탄 및 미사일을 제공하면서 러시아에 계속 빚을 지우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북한의 파병은 결국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북한이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중국이 아닌 러시아에 베팅했다는 것이다.
천 전 수석은 “러시아는 향후 북한이 빚을 갚으라고 청구할 때 거절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며 “북한이 당장 군사기술과 장비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핵무기 기술보다 군사위성의 ‘눈’ 역할을 해줄 광학기술 및 합성개구레이더 기술과 노후화된 방공망을 대체할 방공 무기 및 신형 전투기를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천 전 수석은 “러시아가 북한에 식량·에너지 지원만 해주더라도 문제”라며 “식량 에너지 받는 게 당장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북한이 계속 제재를 견디면서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천 전 수석은 “러시아가 한국의 완전한 적대국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전제로 대러시아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여전히 살상 병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가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에 무기 수출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살상 무기 수출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천 전 수석은 북한의 파병이 우크라이나전 판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봤다. 그는 “1만명으로 전세를 바꾸고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열심히 싸우지도 않을 것”이라며 “젊은 북한 군인들은 ‘누구를 위해 우리가 남의 전쟁에 총알받이가 돼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