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화한 이후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포탄 및 살상 무기를 포함한 각종 무기·군수 지원을 검토하는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은 만큼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날 주한 러시아 대사를 불러 “우리 핵심 안보 이익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픽=이철원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살상 무기 지원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련 동향을 지켜볼 것”이라며 “필요한 조치들이 검토되고 강구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 북·러 조약 체결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내역은 무기 거래, 군사 기술 이전, 전략 물자 지원 등 러시아와 북한 간 협력의 수준과 내용을 지켜보면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군 당국은 내부적으로 인력 파견·파병, 살상 무기 지원 등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탄도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방공 체계, 155㎜ 등 포탄, 무인기(드론) 전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Ⅱ 중거리 지대공 유도 무기 체계는 우크라이나가 가장 필요한 무기 체계로 알려졌다. 연일 미사일이 날아와 공습경보가 울리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방공 체계 확보가 시급하다고 한다. 천궁Ⅱ 같은 탄도미사일·항공기 요격 체계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미국·이스라엘·중국·러시아·한국 정도다.

군사 전문가들은 향후 대(對)러시아 협상력 등을 고려할 때 우선적으로는 방어적 성격 무기 체계를 지원하고 향후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단계별 접근을 주문하고 있는데, 천궁Ⅱ는 이런 접근에도 들어맞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다만 천궁Ⅱ는 현재 우리 군 및 UAE·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등에 납품해야 해 당장 지원할 물량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는 천궁, 보병용 지대공 무기 신궁 등도 우크라이나에 지원 가능한 방공 무기로 검토되고 있다.

지난 5월 우크라이나 방위사업청장이 방한했을 당시 요구했던 드론도 지원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적 드론을 전파 교란을 통해 무력화할 수 있는 ‘재밍 드론’과 적 전파 교란을 방어할 수 있는 ‘재밍 내성 드론’을 당시 우리 정부에 지원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적 드론에 전파 교란 공격을 할 수 있는 휴대용 ‘안티드론 건’도 지원이 가능할 전망이다.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을 결정할 경우 명품 K방산 무기인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전술지대지유도무기 등도 지원이 가능할 전망이다. 군 소식통은 “K-2 전차와 K-9 자주포는 우리 군에는 납품이 끝난 무기 체계로 언제든 ‘고’ 사인만 떨어지면 만들어 보낼 수 있다”고 했다. K-9을 포함해 우크라이나군 자주포가 활용하는 155㎜ 포탄은 대량 생산이 가능해 단기간에 납품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미 155㎜ 포탄 50만 발을 미국에 대여해 주며 우크라이나에 우회 지원한 바 있다.

북한군이 전장에 투입될 경우 기존 우회지원에서 포탄을 직접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사거리가 180㎞ 안팎인 단거리탄도미사일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규제보다 사거리가 짧아 지원 가능하다. 다만 괴물 미사일 ‘현무-5′를 포함한 현무 시리즈는 사거리가 300㎞ 이상이라 MTCR 규제에 저촉돼 지원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북한이 러시아에 대규모 전투 병력을 투입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대북 정보 병과와 적 전술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소수 인력을 보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대 규모 파병이 아니라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전투기 조종사를 훈련하기 위한 공군 F-16 교관 파견 또는 우크라이나 전투기 파일럿의 국내 교육 등도 거론된다. 공군력에서 열세인 우크라이나는 지난 8월 서방으로부터 F-16 전투기를 지원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숙련된 조종사가 부족해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K-9 자주포 운용법을 국내에서 가르쳐주듯 F-16 전투기 운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