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작년 3월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의 상징적 인물인 양금덕(95) 할머니가 23일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인 ‘제3자 변제안’을 수용했다.

그간 양 할머니는 일본 전범 기업이 아닌 민간 기부금 형식의 지원금으로 피해자 배상금을 지급하는 윤 정부의 해법에 대해 “잘못한 사람 따로 있고 사죄하는 사람 따로 있느냐. 그런 돈은 받을 수 없다”며 반대해 왔다. 30여 년간 강제징용 피해의 산 증인 역할을 해오던 양 할머니가 윤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동의하면서 한일 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강제징용 재판 중인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양 할머니는 이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으로부터 대법원의 강제징용 확정 판결에 따른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수령했다.

2018년 대법원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등 강제징용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는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등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오며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작년 3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민간 기부금을 받아 대법원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내놨다. 재단의 재원은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도움을 받은 포스코가 기부한 40억원이 바탕이 됐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이 작년 3월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러한 정부 해법에 따라 지금까지 2018년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중 11명이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수령했다. 그 중에는 생존자도 한명 포함됐었다. 정부 해법을 거부한 나머지 4명 중 생존자는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104) 할아버지 2명이었는데 이날 강제징용 피해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양 할머니가 정부 해법에 동의한 것이다. 1944년 일제에 강제징용 돼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중노동을 했던 양 할머니는 1992년부터 한일 양국을 오가며 강제징용 피해를 증언해 왔다.

정부 해법에 강경한 입장이었던 양 할머니는 지난 5월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찾아가 “2022년 인권위가 추진했던 모란훈장(대한민국 인권상) 서훈이 취소돼 죄송하다”고 사죄하는 등 정부의 진심 어린 설득 끝에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정부는 배상금 수령을 거부한 나머지 4명의 유족 등을 상대로도 법원에 배상금을 공탁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해 법원에서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양 할머니의 배상금 수령은 전국에서 배상금 관련 확정 판결을 받았거나 현재 재판을 진행 중인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작년 3월 정부가 제3자 변제안 해법을 내놓은 이후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52명이 배상금 판결을 받았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현재 비슷한 강제징용 배상 소송이 전국에서 80여건 진행 중이며 원고는 약 1200여명이다. 정부는 이중에서 200~300명이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