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정권을 위해 파견된 인민군 여러분, 다른 나라에서 무의미하게 죽지 말고 항복하세요. 이미 항복한 러시아 군인 수천 명도 하루 세끼 고기와 신선한 야채, 빵이 포함된 따뜻한 식사와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종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이 23일(현지 시각)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병사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심리전 내용의 일부다. 러시아군을 상대로 투항을 권유하는 텔레그램 채널 ‘나는 살고 싶다(Хочу жить)’에 한국어 메시지를 띄운 것이다. 이 채널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십만 러시아군의 운명을 되풀이하지 말라”며 “우크라이나 포로 수용소는 국적과 종교, 이념과 관계없이 모든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정보총국 측은 또 포로 수용 시설을 보여주는 별도의 동영상을 통해 “전쟁 포로들은 별도의 수면 공간을 갖춘 크고 따뜻하고 밝은 방에 수용된다”고 했다. 이 영상 말미에는 투항을 위한 메신저 및 전화 연락처와 QR코드도 나왔다.
이미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대(對)러시아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북한군에 대해서도 이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국내 민간단체들도 현지에서 심리전 동참을 준비 중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에 대한 심리전은 한국이 축적된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협업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군 당국과 군사 전문가들은 타국에서 총알받이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큰 배고픈 북한 병사들에게 이런 심리전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 정부는 북한이 러시아에 파견한 군인들이 대부분 10대 후반~20대 초반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수작전부대로서의 전투력과는 별개로 심리적으로는 취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용현 국방 장관도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말이 파병이지, 총알받이 용병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했다. 김 장관은 “통상 파병하면 그 나라 군대의 지휘 체계를 유지하고 군복, 표지, 국기를 달고 자랑스럽게 활동한다. 하지만 북한은 러시아 군복으로 위장하고 러시아군 통제하에 아무런 작전 권한도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민간단체뿐 아니라 우리 군 심리전 부대가 직간접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리 군은 6·25전쟁 이후 약 70년 이상 북한군을 상대로 심리전을 전개해 온 노하우를 갖추고 있고 언어 장벽도 없다. 우크라이나 심리전 부대는 한국어를 인터넷 번역기에 의존하고 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본지 통화에서 “파병된 북한군을 상대로 누구를 위해 총알받이가 돼야 하고, 목숨값으로 받은 돈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는지를 알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우크라 전장의 심리전은 소셜미디어보다 우리 군이 기존에 사용했던 전단·확성기·라디오 방송 등을 활용해야 효과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군은 자주포 등을 통해 발사하는 전단탄(彈), 전단 풍선, 무인기(드론)를 통한 전단 살포, 확성기를 이용한 방송, 단파 라디오 등을 활용한 대북 방송 송출 등 복수의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전단을 한국에서 제작해 우크라이나군의 자주포와 드론을 활용해 이를 살포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대북 확성기와 대북 전광판 등을 활용한 심리전도 가능하다. 군 관계자는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장은 1차 대전 참호전을 떠올리게 하는 진지전”이라며 “전선이 고착화돼 있기 때문에 이동식 차량형 확성기가 전방에 노출된 북한군을 상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북한군 공비 소탕 당시에 사용했던 헬리콥터에 확성기를 탑재해 심리전 방송을 진행하는 방법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는 드론을 활용해 가능할 전망이다.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를 통해 내보내는 ‘자유의 소리’ 방송을 우크라이나에서 틀면 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심리전 메시지로 북한 체제 비판보다 대한민국의 우월한 삶의 질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한 북한 전문가는 “최근 탈북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이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국내 방송은 ‘6시 내 고향’이었다”며 “드라마는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북한 사람들도 우리 서민 생활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6시 내 고향’을 보면 생활 수준 차이를 느끼고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