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제막식이 이뤄지는 6·25전쟁 영웅마(馬) ‘레클리스’ 미 해병대 하사의 동상. 6·25전쟁에서 포탄 등을 운반하며 공을 세운 레클리스는 제주마(馬) 혈통이다. /한국마사회

“그녀는 여느 말[馬]이 아니었다. 진정한 미 해병이었다.”(레클리스를 다룬 미국 책의 소개문)

6·25전쟁에서 미 해병대 소속으로 포탄과 부상자를 나르며 활약했던 한국산 군마 ‘레클리스(Reckless·1948~1968) 하사’의 동상이 26일 제주 애월읍 렛츠런파크 제주에 세워진다. 레클리스는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미는 제주마(馬) 혈통이다. 전쟁 영웅 말이 76년 만에 자신의 뿌리인 제주를 찾는 것이다.

6·25전쟁 당시 미군은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에서 물자 공급을 위해 일부 전선에서 차량 대신 군마를 활용했다. 서울에서 경주마의 새끼로 태어난 암말 ‘아침해’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미 해병대에 250달러에 팔려 입대했다. 아침해는 두 달간에 걸친 훈련 끝에 M20 무반동포(recoilless rifle) 포탄 운반 임무를 맡게 됐다. 무반동포 영어 발음과 닮은 이름 ‘레클리스(reckless·무모한)’를 새로 받았다.

레클리스는 이름처럼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다. 미 해병대 기록에 따르면 레클리스는 1953년 3월 27일 경기 연천군 백학면 매현리 네바다 전초 방어 전투에 투입돼 미 해병대가 발포한 무반동포 포탄의 95%에 달하는 386발(약 4t가량)을 51차례에 걸쳐 혼자서 운반했다. 적의 포격이 분당 500발씩 쏟아지는 상황에서 두 차례나 부상당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물자를 나르는 군마는 적의 조준 사격 목표가 됐다. 보급병들은 레클리스에게 임무를 맡길 때마다 ‘마지막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왔다. 이 같은 활약으로 레클리스는 1954년 4월 미 해병대 ‘병장’ 계급을 받았다. 전장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퍼플 하트(작전 중 부상시 수여) 훈장 2개, 미국 대통령표창 등을 받았다.

그래픽=김성규

레클리스는 정전 후 미 해병대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1954년 11월 10일 샌프란시스코항을 통해 미국 땅에 발을 디뎠는데, 우연히도 미 해병대 창설 기념일(미 해병대는 1775년 11월 10일 창설)이었다. 레클리스는 미 해병 1사단이 주둔하는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 머무르며 미 언론을 통해 ‘전쟁 영웅’으로 조명받았다. 1959년에는 하사(Staff Sergeant)로 진급했다. 하사 진급식은 미 해병대사령관 주재로 해병대원 17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군마가 해병대 하사 계급장을 단 것은 레클리스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레클리스는 하사 진급 이듬해인 1960년 해병대에서 전역했다. 퇴직금으로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에게 평생 먹을 사료와 축사를 제공했다.

레클리스는 196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숫말 피어리스(Fearless·용감한) 등 새끼 4마리를 낳았다. 레클리스는 말년에 허리 관절염을 앓았고, 낙상이 악화하면서 안락사됐다고 한다. 미 해병대는 군 장례식을 치러줬고, 캠프 펜들턴 기지 내에 레클리스를 안장했다. 레클리스가 살았던 마구간 옆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라이프’지는 1997년 레클리스를 ‘미국 100대 영웅’에 포함했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서 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2014년 출간된 ‘레클리스 하사: 미국의 군마’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 해병대 본부를 포함해 미 전역에 레클리스의 동상은 6개가 세워졌다.

한국에서도 2016년 경기 연천에 동상이 세워졌고, 한국마사회가 2019년 뮤지컬 ‘레클리스 1953′을 선보였다. 제주도와 마사회가 이번에 레클리스 동상을 건립하며 ‘제주마’와 ‘한미동맹’을 재조명하고 나섰다. 26일 제막 행사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제이컵 로빈슨 주한미군 해병대 부사령관, 정기환 마사회장 등이 참석하고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는 축전을 보낸다. 임기모 제주 국제관계 대사는 “레클리스의 동상은 청동보다 오래갈 한미동맹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6.25 때 활약한 군마 '레클리스' 하사. /미 해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