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의미있는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지난주 막전막후 <30회> [ ‘간도협약은 무효’ 국감 자료집 회수한 외교부]에서 계속됩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4/10/20/7KHHMB3PHJEIRKPPJ5KR235FWY/)
2004년 10월 초 ‘간도협약은 무효’라고 밝힌 국정감사 자료집을 국회에 배포했다가 회수한 파문이 퍼져가는 가운데, 같은 달 14일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정례 브리핑을 가졌습니다. 반 장관은 이 자리에서 “자료 제출과정에서 실무자들 간에 행정적 착오가 있었다.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반 장관은 “간도협약은 법리적으로, 또 국제정치적으로 보는 것이 있고 복잡한 고려 요소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또 “간도협약은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로 좀 더 정확한 역사적 고증과 신중한 입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이전에) 발표했었다”고도 했습니다.
간도협약은 을사조약으로 우리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이 1909년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의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준 협약을 말하는데, 이에 대해 무효라고 하지 않고 “신중한 입장이 필요하다”로 후퇴한 겁니다.
외교부의 이 같은 입장은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같은 날 청와대도 외교부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도 이날 불교방송에 출연, “조약 문구라든지 법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 간도 문제가 중국과 우리 사이의 영토와 국경 문제가 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조약이 유효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크게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외교부는 조선일보가 이 사안을 보도한 후, 브리핑을 갖기로 했다가 이를 하루 연기하면서까지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 미래의 영토보다는 현재의 한·중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겁니다.
◇조약국과 아태국 논쟁
2004년 간도협약 사례는 여러 면에서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정부 내부의 검토와 토론을 거쳐 작성된 후 국회의원들에게 배포된 자료를 단순한 행정적 착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외교부는 국감자료집 7권 186쪽에 “을사보호조약이 무효인 만큼 이 연장선상에서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188쪽에는 “1941년 이전의 중국과 일본 간 모든 조약을 무효화한 중·일 평화조약과 별개로 간도협약은 원천무효”라는 표현을 명기했습니다.
당시 조약국은 간도 문제를 제기하면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불가피하나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통일된 후 이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중국을 향해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밝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더 늦기 전에 이를 제기해서 나중에 외교적 카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중국을 직접 담당하는 아시아·태평양국에서는 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득실을 많이 따졌습니다. 당시 외교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해결하는데 외교력을 집중시키고 있었기에 양국간 갈등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또, 간도에 대한구체적인 지리적 정의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제기했다가 오히려 중국에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특히 조약국에서 이 문제를 담당했던 외교관 K 과장의 법리적 입장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외교부를 취재하면 들은 얘기 중에서 가장 솔직한 것은 이런 겁니다. “우리의 영토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외교력을 발휘하라는 요구가 있지만, 솔직히 우리는 그런 힘이 없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고구려사 왜곡시정 문제가 시급한 상황에서 간도협약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 간도협약 인정한 북한
외교부는 간도협약을 인정한 북중 국경 조약도 고려했습니다. 1962년 평양에서 김일성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서명한 북한과 중국 간의 ‘조·중 변계(邊界)조약’은 압록강·두만강을 국경으로 정해 1909년의 간도협약을 사실상 추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간도 영유권 문제를 일절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통일이 된다면 국제법에 따라 북한이 맺은 조약을 승계할 수 밖에 없지않느냐는 판단도 있었다고 합니다.
외교부의 이런 입장과는 달리 상당수 민간 전문가들은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간도는 영영 중국 영토로 굳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당시 신형식 백산학회 회장(상명대 초빙교수·한국고대사)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간도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 회장은 “일제가 제작한 지도에도 드러나듯 간도는 명백한 우리 영토였고, 1909년의 청·일 간 간도협약은 국제법상으로도 무효”라며 “만일 정부가 제기하지 못한다면 국회와 학계에서라도 이 문제를 이슈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영돈 인천대 교수(국제법)는 “중국이 국가 주도로 자신의 국익에 유리한 이론화 작업을 추진하는 데 비해 우리 정부는 ‘외교적 마찰’ 운운하며 이런 논의를 스스로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중국 정부와의 ‘조용한 조율’을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삼음으로써 중국에 대한 ‘카드’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었습니다.
성재호 성균관대 교수(국제법)는 “영토 분쟁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해결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양쪽 정부 차원에서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며 “간도문제는 언론과 학계 등 민간에서만 제기된 문제여서 공식적인 ‘분쟁지역’조차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등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9일만에 다시 바뀐 정부 입장
그런데 이렇게 ‘행정 착오’로 봉합될 것 같았던 간도협약 문제는 외교부가 다시 입장을 바꿔 주목받았습니다. 조선일보의 간도협약 보도 후 9일 만인 2004년 10월 22일 다시 열린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는 간도협약 청문회처럼 진행됐습니다. 한나라당의 정문헌, 최병국 의원 등에 이어 같은 당의 이성권 의원(현 국민의힘 의원)이 간도 문제를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이성권 위원
처음에 이 자료(국정감사 자료집)가 제출되는 과정과 바뀌게 되는 과정에 어떤 논의와 어떤 형태의 얘기들이 오고 갔는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그래서 조약국에서는 법리적인 측면을 검토를 했고요, 그다음에 아태국에서는 여러 가지 현재의 한중관계라든지를 감안해서 했습니다.
○이성권 위원
좋습니다. 방금 법리적 측면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리적 측면이라는 것은 국제법상의 측면을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예.
○이성권 위원
그렇게 얘기를 하시면 결국은 외교통상부도 국제법상으로는 인정을 한다는 말씀 아닙니까?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그래서 아까 아침에 노영돈 교수의 여러 가지 참고인 진술 또 여러 위원님들 말씀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측면은 제가 반복은 하지 않겠습니다. 간도협약에 관해서는 법리적으로는 무효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성권 위원
법리적으로는 무효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렇지요?
이 의원은 국감 전에 간도협약에 대해 질의했을 때 외교부로부터 ‘무효’라는답변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반 장관을 상대로 “법리적으로는무효”라는 답변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다음날 신문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무효라고 할 수 있으나 영유권문제는 (법적 문제와) 분리해서 접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보도됐습니다. ”간도협약이 무효라고 해서 간도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입장이 한중 관계에 새로운 사안을 발생시킨다고 보지는 않는다”,"간도문제는 통일이라는 민족적인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접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전했습니다.
반 장관이 이날 국회 답변을 이용해 밝힌 ‘법리적 무효’는 9일 전의 ‘행정적 착오’와는 다른 입장으로 ‘간도 협약이 법적으로는 무효이나 간도 영유권문제는 법적인 측면과 분리해서 접근한다’는 쪽으로 정부 입장이 다시 정리됐음을 뜻합니다. 국회에서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당장 중국에 제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표명한 절충안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이렇게 입장이 재정리된 배경에는 우리의 영토와 관련된 문제인데 나중에 우리나라에 불리하지 않게 해석될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는, 정권 차원의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86 운동권 세대가 장악한 노무현 청와대에서 간도협약을 인정했다는 비판을 듣기 싫어 ‘법리적으로는 무효’라는 부분이 강조되기를 강하게 바랬다는 겁니다.
한편,당시 청와대 내부에서 중국에 “간도협약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고 반대급부로 북핵 문제 등에서 더 큰 협조를 얻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왔다고 합니다. 중국과 그런 방향으로 협의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외교관도 있는데, 진실은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규명될 듯합니다.
◇ 2009년 간도협약 100주년 맞아 간도되찾기 운동
2004년 외교부 국정감사 당시 간도협약 관련 국감 자료집이 회수된 사태로 중요한 역사적, 외교적 사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제대로 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대해 전직 외교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정부의 모든 공식입장은 어떤 비판도 소화할 정도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첫 자료집에서 무효라는 입장이 발표된 이상 그에 맞는 논리로 대응하면 좋았는데, 이를 회수해서 중국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인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전직 외교관은"간도협약을 비롯해 중국과의 여러 사안에 대해 일본 관련 문제에서 취하는 엄격함의 단 몇 분의 1이라도 가져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정부와 민간이 1.5 트랙에서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언제든 중국에 사용할 수 있는 외교적 카드로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간도협약은 2009년 간도협약 체결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간도 되찾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간도 영유권 회복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만들어져 국민청원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대표발의) 등 국회의원 50명은 이 협약이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학계에서도 중국의 입장을 반박하는 회의가 다수 열리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이후 간도협약은 다시 주목받는 큰 계기를갖지 못한 채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P.S.
1. 2004년 10월 22일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에는 간도협약과 관련해 노영돈 인천대 교수가 참고인으로 나왔습니다. 당시 노 교수는 “(간도협약에 대한 정부의) 신중론 자체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말로 우리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비판했는데, 되새겨 볼만하다고 생각해 소개합니다.
"(간도협약) 당시 대한제국은 제3국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조약법상 제3국에 대한 효력, 상대적 효력이라고도 하는데요. 과거부터 국제 관습법으로 확립되어 온 것이 조약은 제3국에 아무런 이익도 해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3국인 대한제국에는 그 조약 자체는 아무런 효력이 미치지 않고요, 따라서 기존의 외교적으로 진행되었던 간도분쟁은 해결된 바가 없다, 적어도 우리 측에서는 그 조약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간도 협약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통상 신중하게 접근해야 된다는 신중론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더 더욱이나 동북공정이라는 것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서 보면 간도문제는 우리가 당연히 제기해야 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렇지 못한 측면에서 또 정책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연구가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해야 될 일이 많은 것이지 신중하다고 해서 덮어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신중론 자체도 신중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