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에 ‘폭풍군단’ 병력 1만여 명을 사실상 ‘총알받이’로 파병한 이후 병사들의 가족 등이 동요하는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파병 군인 가족에게 참전 사실을 숨긴 채 “훈련을 갔다”고 거짓말하는 정황도 한국 정보 당국에 포착됐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파병 사실이 주민에게 알려져 확산되는 것을 의식한 북한 당국이 보안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 이성권 의원은 “북한이 군내 비밀 누설을 이유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병사들 입단속을 하고 있다는 국정원 보고가 있었다”며 “파병 군인 가족들에게는 훈련 갔다고 거짓 설명하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이러한 단속 조치에도 파병 소식이 군 내부에 퍼지면서 ‘왜 남의 나라를 위해 우리가 희생하느냐’며 강제 차출을 걱정하는 군인들의 동요도 있다고 한다”고 했다.
국정원은 지난 23일에도 국회 정보위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하고 북한 당국이 러시아 파병 사실을 내부에 알리고 있지 않지만 이미 폭풍군단 파병설이 일부 유포됐고 “파병 군인 가족들이 크게 오열한 나머지 얼굴이 많이 상했다”는 말도 북한 내부에서 돌고 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북한이 파병 군인 가족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입단속을 하기 위해 이들을 모처로 집단 이주시켜 격리하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내부 단속 움직임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파병군 사상자가 대거 발생하거나 탈영·탈북이 생길 경우 북 체제에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번에 파병된 북한군은 주로 한국 산악 지형에 맞춘 훈련을 받아온 경보병 부대로 알려졌다. 그런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평원 개활지에서 익숙지 않은 드론·참호전에 맞닥뜨릴 경우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탈북자 출신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은 통화에서 “파병 군인 상당수가 10·20대인 만큼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이 약한 ‘MZ세대’ 병사들은 생사가 갈리는 전장에서 실종·사망을 위장해 탈영·탈북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식량 부족 사태가 심각한 북한 일각에서는 “러시아로 파병 가면 배는 곯지 않을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고 한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파병 자식을 둔 부모가 아닌 일반 주민 사이에서는 “러시아에 나가면 치즈·우유 등을 많이 먹을 수 있으니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