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일부 선발대가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국방정보본부가 30일 밝혔다.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한군과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교전을 벌여 북한군 사상자가 나온 정황이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북한군의 전투 개시가 임박했다”고 했다.
국방정보본부는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 파병군의 일부 선발대가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정보위 간사 박선원 의원은 “오래전부터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했기 때문에 기술 인력은 이미 다 있었을 것”이라며 “아울러 ‘폭풍군단’은 특수부대니까 그와 관련된 지휘관 일부가 선발대로 현지에 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CNN은 29일(현지 시각) 서방 정보 당국자를 인용해 “소수의 북한군이 이미 우크라이나 내부에 침투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을 지원하는 리투아니아의 비영리단체(NGO)도 현지 매체와의 28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과 북한군의 접촉이 지난 25일 이뤄졌고 북한군은 1명 빼고 전부 사망했으며, 생존한 1명은 부라티야인(러시아 부라티야 공화국의 몽골계 원주민) 서류를 갖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앞서 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신분을 위장하려는 북한군이 러시아 군복을 입고 동양인과 외모가 비슷한 시베리아 야쿠티야·부라티야 원주민 위조 신분증을 러시아에서 발급받았다고 밝힌 점과 부합하는 정황이다. 이 단체는 또 “우크라이나 소식통에게서 ‘러시아 지휘관들은 아무도 한국어를 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북한군들은 러시아인들에게 큰 골칫거리”라고 전했다.
한·미 정부는 북한군이 정식으로 전선에 투입됐다거나 이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확인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등이 직접 현장에서 수집하는 정보와 위성사진 등을 이용하는 기타 국가들의 정보 수집 양태가 다를 뿐 현재 각국에서 드러나는 정보는 저마다 개연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국방정보본부에 따르면, 북한군은 현재 전선이 펼쳐져 있는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일대의 평원 지형과 현지 언어에 익숙하지 않아 독자적으로 전투를 수행하기 어려워 러시아군과 혼합된 편제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러시아 군사들이 북한군을 “빌어먹을 중국인들”이라고 부르며 무시하는 등 갑작스러운 파병으로 인한 혼란으로 현장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방정보본부는 한반도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폭풍군단(11군단)이 산악 지형 침투 훈련에 최적화돼 있음에도 평원 지형인 우크라이나 전장에 파병된 이유에 대해 “일반 보병보다는 훨씬 전투력이 강한 정예부대이기 때문에 (김정은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의식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에는 아직까지 드론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상황이라 첨단 드론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군의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보고도 있었다.
파병된 북한군은 주로 20대 초반이며 10대 후반도 일부 포함됐다는 외신 보도도 사실일 것으로 추정됐다. 국정원은 정보위에 “북한 군 입대 연령은 18세부터 시작한다”며 “폭풍군단으로 파병된 북한군은 주로 20대 초반이 많고, 10대 후반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군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정보위 간사 이성권 의원은 “북한의 GP(초소) 근무자가 우리 대북 방송 시간대에 춤을 추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군은 북한이 내부 동요를 우려해 러시아 파병 사실을 대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해 대북 방송으로 러시아 파병 사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 왔다. 이에 북한 당국은 맞불 성격의 방송 차량을 운영하는 등 ‘자구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