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빠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구가 하루 뒤인 31일(현지 시각) 양국 외교·국방 장관 회의 공동성명에는 “한반도 비핵화” 표현으로 담겼다. 이날 50여 분간 이어진 ‘한미 외교·국방(2+2) 장관 회의’ 기자회견에서도 한국 측은 ‘북한 비핵화’를 강조한 반면, 미국 측은 ‘한반도 비핵화’를 줄곧 사용했다.
미 측은 이날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토니 블링컨 국무 장관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미국의 정책은 유지된다”고 짧게 답한 것이 전부였다. 블링컨 장관은 2021년 ‘2+2 회의’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다른 동맹국, 파트너들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계속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과 지난해 SCM 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지지했다.
비핵화 대상으로 북한을 명시하는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화’와 달리 북한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문재인 정부가 사용한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국의 기조와 달리 미국에서는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며 ‘비확산’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핵 증강 억제 및 군축을 통한 위험 관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고위 관료들은 수차례 “미국은 중간 단계(interim steps)를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해왔다. 이는 자칫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면서 ‘핵 군축’ 협상으로 전환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절대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전술 핵 재배치와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반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해 최근 국내의 핵 잠재력 확보 및 자체 핵무장 여론을 견제하는 뉘앙스가 담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다자 회담도 아니고 한미 동맹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는 SCM 공동성명에서 ‘북한 비핵화’를 삭제한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사안”이라며 “또 이것이 문제가 된 이후 열린 2+2 회의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는 표현을 미 측이 쓴 것은 우리 외교의 실패”라고 했다.
한편 양국은 이날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 심화를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 나가기로 했다. 양국은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하는 지원을 면밀히 주시하고 추가 공개하기로 했다”며 “더 이상의 불법적이고 무모하며 불안정을 야기하는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함께 필요한 조치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