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7일 “윤석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모두 좌고우면하지 않고 거침없이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리더십은 실무진들이 해결 못 하는 문제를 직접 소통을 통해 풀 수 있다”며 “트럼프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만나 줄건 주고 받아낼 건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 윤 정부 초대 외교장관을 지낸 박 전 장관은 이날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동맹 기여분을 높이는 대신 잠재적 핵 능력을 확보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박 전 장관은 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빌 해거티 상원의원,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등 지한파들을 적극 활용해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식의 부정적 인식을 벗겨내야 한다고 했다.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할 일은 뭔가.
“빠른 시일 내 두 정상이 직접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공식 외교 채널과 민간 비공식 채널을 총동원해 트럼프에게 북핵 문제와 통일·대북 정책 등 한반도 안보 현안과 관련한 우리 입장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 스타일이 잘 맞을까.
“트럼프는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지만 두 정상이 직접 만나면 리더십 스타일과 배짱이 아주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정상 모두 좌고우면하지 않고 거침없이 결정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만나 대화하면 의외로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는 협상이 잘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만나서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하나.
“북한이 비핵화하면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는 ‘담대한구상’과 ‘8·15 통일 독트린’의 철학과 비전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면 효과가 클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이뤄진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의 대북 접근법과 일맥상통하는 지점도 있다.”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은.
“트럼프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선호한다. 우리가 대북 정책과 관련 미국에 실질적 제안을 선제적으로 할 필요도 있다. 비핵화 협상 촉진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북한이 원하는 북핵 보유 인정을 전제로 한 핵 군축 회담이나 핵 동결 수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도록 우리가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참모진 중 누구를 주목해야 하나.
“미국 언론에서 국무장관 1순위로 거론되는 빌 해거티 상원의원은 주일 미국 대사를 지내 동북아 현안에 정통하다. 국방장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주한 미군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트럼프 1기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라인스 프리버스도 지난 9월 방한 때 만나 대화해보니 매우 합리적 성향이었다. 안보보좌관 후보군인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대사,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 등 모두 경험과 능력이 충분한 인사들이다.”
-트럼프 참모들과 우리 측 소통은 잘되고 있나.
“이미 소통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앞으로 전 세계 외교관들이 이들에게 달라붙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몇 배 더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의 귀를 잡고 있는 이들이 한국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 한국은 ‘머니 머신’이 아니라 미국 글로벌 전략의 핵심 파트너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더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동맹국들에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서는 한미 간 확장 억제 실효성을 강화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지만 미국이 주한 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거론하는 경우 우리도 이에 대응한 옵션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 자체적으로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추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우리도 일본 수준으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방위비분담금 증액은.
“비용 문제에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다만 트럼프가 선거 기간 이야기한 연간 100억달러(약 13조6000억원)는 지난달 한미가 합의한 2026년 수준(약 1조5192억원)에 비해 10배나 많다. 비현실적이고 과도하다. 이런 무리한 제안은 부담이 너무 크다는 우리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