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 토머스 번 회장이 미 대선 이후의 한미 관계에 대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한미 관계 우호를 위한 미국 비영리 민간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토머스 번 회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동맹관계를 손보겠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블러핑(허세)도 많았다”며 “한국은 트럼프 2기 등장에 우려만 하기보다 조선업 협력 같은 실체적 사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아시아·태평양 수석부사장을 지낸 번 회장은 2015년부터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을 맡아 정치·경제·문화 분야의 한미 협력 사업을 해오고 있다. 1976년 평화봉사단으로 경남 창원과 충북 충주에서 3년간 교사 활동을 했던 대표적인 ‘지한파’다.

번 회장은 최근 방한해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경제와 금융을 전공한 입장에서 모든 국가에 10~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정책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관세는 무역을 왜곡하며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공화당이 이번 대선에서 이긴 이유는 지난 4년간 민주당 정부의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는데, 트럼프가 실제로 보편적 관세를 밀어붙일지는 봐야 한다”고 했다.

번 회장은 트럼프 2기에서 반도체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에 따라 한국 기업이 바이든 행정부가 약정한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두 법 모두 미국 내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작년 한 해에만 200억달러가 넘는 역대 최대의 대미 투자를 통해 강력한 지역 경제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일자리가 두 법안으로 가능해진 만큼 법안 폐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전면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트럼프가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먼저 언급한 조선업 협력에 대해 번 회장은 “다른 이슈들보다 이 사안을 먼저 꺼낸 것은 한국에 매우 긍정적 신호”라고 했다. 번 회장은 “트럼프는 미군 함정의 보수, 수리, 정비를 뜻하는 ‘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약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 이는 한화오션이나 HD현대중공업이 굉장히 빠르게 진출할 수 있는 분야”라며 “트럼프가 ‘미국 군함은 미국 내에서만 건조해야 한다’는 100년 된 ‘존스법(法)’을 바꿀 수도 있다”고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일 방한 중인 주한미국 대사 출신의 캐슬린 스티븐스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오른쪽), 토마스 번 회장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며 집권 1기 때 문제가 됐던 이슈들보다 한국과의 조선업 협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번 회장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한미 동맹 약화 우려가 많지만, 양국이 조선업 협력 이슈처럼 건설적이고 가시적인 사안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50년간 한국과 인연을 맺어 온 번 회장은 지금도 K팝보다는 한국 판소리가 더 좋다고 한다. 애창곡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꼽는다. 그는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을 맡은 지난 9년은 한류의 상승 물결에 같이 올라탄 시기”라며 “뉴욕 본부에서 미국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데 모두들 K팝 때문에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2015년 연간 133명이던 수강생이 지난해 1314명으로 10배 늘었다”고 했다.

다만 번 회장은 “현재 뉴욕 본부 직원이 18명밖에 안 된다”며 “한미 우호 사업 확대를 위해 민간 후원금이 더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명언을 인용하며 민간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코리아소사이어티에 대한 한미 양국 국민들의 관심을 부탁했다.

이번 미 대선과 함께 치른 상원의원 선거에서 120년 한국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계(앤디 김) 상원의원이 당선된 것에 대해 번 회장은 “미국의 정책 결정과 입법 과정에 한인들 목소리가 더 반영될 것으로 보여 매우 긍정적”이라고 했다. 번 회장은 “2018년부터 미국 여야 의원들과 한국에 와서 국방장관을 만나고 평택 미군 기지와 비무장지대(DMZ)도 갔다. DMZ는 이제 너무 많이 가서 안 갈 정도”라며 “미 의회에서도 인권 같은 북한 문제에서는 당파적 분열이 크지 않고, 미군도 한미 동맹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만큼 (트럼프 임기인) 향후 4년간 한미 동맹은 약해지리라 보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