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10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별관에서 열린 한·미·일 차관 합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19일(현지 시각)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과도적 역할을 지지한다”고 했다. 미국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에서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에 대한 미국 정부 차원의 지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캠벨 부장관은 “조만간 한 대행 체제의 한국 정부와 고위급 대면 소통을 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1월 20일에 전에 조태열 외교 장관 등이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차질을 빚었던 동맹 외교 정상화 수순을 밟는 것이다.

캠벨 부장관은 이날 워싱턴 DC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 언론 간담회에서 한 대행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강조했다. 캠벨 부장관은 “미국은 한국의 불확실한 시기에도 한국이 취한 헌법적 조치를 지지해왔고, 어려운 시기를 관리해 나가는 데 대해 한국에 신뢰를 표명해 왔다”며 “한 대행은 수십 년간 한국 정부에서 재직한 경험이 있으며 주미 대사를 역임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15일 한 대행과의 통화에서 “나는 당신을 너무 잘 알고,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했다고 한다. 한 대행이 2009~2012년 주미 대사를 지낼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다. 당시 캠벨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 ‘한덕수 대사’의 카운터파트였다.

앞서 캠벨은 비상계엄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매우 문제 있는 위법한 행동” “심한 오판”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례적으로 동맹국 정상을 거세게 비판했었다. 미국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도상 연습,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의 방한 등도 잇달아 연기했었다. ‘외교 올 스톱’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 측이 “한미 관계에 이상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나선 것이다.

캠벨 부장관은 이날 “우리는 깊은 관여 신호를 계속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권한대행 체제(정부)뿐만 아니라 위기의 다른 행위자들과도 가능한 모든 소통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 등을 통해 한국 정부뿐 아니라 여야 정치권과도 소통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 말로 해석된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는 2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민주당은 “임기를 마치는 골드버그 대사의 송별을 위한 자리”라고 했다.

캠벨 부장관이 조만간 한국 정부 고위급 인사와의 대면 외교를 예고한 만큼 바이든 행정부의 남은 임기 내 양국 외교 장관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커졌다. 조태열 외교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 또는 다른 고위급 인사 간 만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 국방 수장도 20일 통화를 통해 굳건한 한미 동맹 의지를 재확인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김선호 국방부 차관(장관 직무대행)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 통화에서 “한미 동맹이 안보 환경 변화나 국내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국방부는 “김 차관은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 표명에 대해 사의를 표했다”고 했다. 오스틴 장관은 한국 안보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철통같음을 재확인하고 향후에도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양측은 북한 도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연합 방위 태세를 유지하고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확장 억제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김 차관은 이날 오후에는 새뮤얼 퍼파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을 접견했다.

다만 한미 관계 정상화에 적극 나선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당선인은 아직까지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북한 김정은을 거론했지만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중국과 일본 주재 미국 대사는 이미 임명했지만, 골드버그 주한 대사 후임에 대해선 하마평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열린 고위급 당정 협의회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대응 준비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당정은 내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민간 분야 역량을 활용하고 민·관의 대미 네트워크를 상호 보완해 효율적 대미 접촉을 진행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특히 트럼프 행정부 측과의 접촉에 있어서 외교 라인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기업 그리고 민간 분야의 역량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 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한 대행은 “철통같은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빈틈없는 대비 태세를 유지해 한 치의 안보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정부는 한미, 한·미·일, 그리고 많은 우방국과 신뢰를 확립하겠다”고 했다.

당정은 또 트럼프 취임 이후 미·북 협상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차원에서 북핵 문제 대응 구상 및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외교부 및 경제 부처, 기업과 재외 공관 등 민·관 공조 체제로 경제·안보 관련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재외국민·여행객 보호 등도 추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