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무단으로 대규모 구조물을 설치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잠정조치수역은 한중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쳐 ‘바다의 국경선’인 경계선 획정을 유보해둔 민감 지역으로, 어업 행위를 제외한 시설물 설치나 지하자원 개발 등이 금지돼 있다. 12·3 비상계엄 이후 한국 내 정치 혼란이 커지는 틈을 타 구조물 ‘알박기’에 나선 것은 향후 중국이 서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의도란 관측이 나온다.
우리 정보 당국은 지난달 정찰 위성을 통해 중국이 이 지역에 직경 50m, 높이 50m 이상의 이동식 대규모 철골 구조물 1기(基)를 설치한 사실을 포착했다. 앞서 중국은 작년 4~5월에도 인근 지역에 대규모 구조물 2기를 순차적으로 설치했고, 이를 발견한 우리 정부는 중국 측에 강력 항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 주춤했던 중국이 최근 다시 설치를 재개한 것이다.
◇中, 구조물 총 12개 설치 계획… “영유권 주장하기 위한 의도”
중국은 이 구조물이 ‘어업 보조 시설’이라며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의 시설물들이 우리 정부의 제지 없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경우 향후 중국이 이 시설물들을 근거로 ‘해당 지역은 우리 해역’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중국이 이 지역에 총 12기의 구조물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매년 한 두차례 경계 획정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서해를 자국 ‘앞마당’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전략을 본격화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우리 서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규정했고, 최근 들어선 영유권 주장을 위한 근거 만들기에 나선 상황이다.
과거에도 중국은 이 해역에 몰래 구조물을 설치했다가 한국 정부 항의가 들어오면 철수하는 행위를 반복해왔다. 앞서 중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2022년 4월에도 서해에 구조물을 설치한 것이 드러나 양국 간 분쟁이 일었다.
이동규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구조물 설치 이외에도 이 지역에서 군사 훈련도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서해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며 “향후 한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의도”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작년 4~5월 중국이 또다시 구조물 2기를 설치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대통령실 국가안보회의(NSC) 차원에서 대응책을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당시엔 중국에 대한 항의도 즉각 이뤄졌지만 지금 같은 혼란 상황에서는 대처가 제때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중국·필리핀·베트남 등 인접국가 간 영유권 주장이 충돌해 ‘아시아의 화약고’로 꼽히는 남중국해의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은 이 지역에 인공 섬 7개를 설치한 뒤 “우리 영해”라고 선포했다. 처음엔 서해와 마찬가지로 구조물 무단 설치를 시작으로 2013~2016년 차례로 인공 섬 조성에 나섰고, 이후 2022년 이후엔 대함·대공 미사일과 전투기 등까지 반입하면서 군사기지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중국은 동중국해에서도 천연가스전 시추 구조물과 부표 등을 잇따라 설치해 일본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구조물 설치와 더불어 중국 군함이 서해 등 우리 관할 구역 안으로 들어오는 일도 증가하고 있다. 국방부가 2020년 공개한 ‘최근 5년 주요 외국 군함의 한반도 인근 활동 현황’에 따르면, 중국 군함이 배타적경제수역 등 잠정 등거리선을 넘어 한반도 인근에 출연한 횟수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900회가 넘었다.
한편 중국 정부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해커 단체가 지난 6년간 일본의 항공우주 등 첨단 기술 정보 탈취를 목표로 수백 건의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 일본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일본 경찰청과 내각 사이버보안센터(NISC)는 8일 합동 발표 문서에서 중국계 해커 단체 ‘미러페이스’가 2019~2024년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집권 자민당 소속 의원 등을 상대로 사이버 공격을 지속해 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