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는 26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기자회견장에 섰다.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흰 셔츠 위에 검은색 스카프를 둘렀다. 윤 후보가 2019년 7월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으러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동행했던 모습과 비교해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김씨는 최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체중이 8㎏ 정도 빠졌다고 한다. 머리 스타일도 단발로 바꿨다. 이마를 덮었던 앞머리를 정리한 것도 눈에 띄었다.
윤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한 이후 처음 공식 석상에 선 김씨는 기자회견 시작과 끝에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김씨가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이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한 논란을 매듭짓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문제를 지금 수습하지 않으면 윤 후보 지지율 하락세가 계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김씨 본인의 의지가 반영됐고, 회견문 역시 김씨가 초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단상에 오른 김씨는 처음엔 긴장한 표정이었다.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지 못한 채 단상 아래를 살폈다. 뒤로 돌아 마스크를 벗고 회견을 시작한 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날도 추운데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입을 뗐다. 김씨는 이후 준비해온 입장문을 꺼내 읽어 내려갔다.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김씨는 “약 1년 전만 해도 이렇게 많은 카메라 앞에서 대통령 후보의 아내라고 절 소개할 줄은 감히 상상도 못 했다”며 발표문 절반 정도를 남편인 윤 후보와의 관계에 할애했다.
김씨는 “처음 만난 날 남편이 검사라기에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지만,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자신감이 넘치고 호탕했고 후배들에게 마음껏 베풀 줄 아는 남자였다”고 했고, 또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해 ‘밥을 먹었느냐, 날씨가 추운데 따뜻하게 입으라’며 늘 저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저 때문에 지금 너무 어려운 입장이 돼 정말 괴롭다”며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고개를 숙인 채 입장문을 읽어가던 김씨는 “국민을 향한 남편의 뜻에 제가 얼룩이 될까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울먹이기도 했다.
김씨는 “(2012년) 결혼 후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남편의 직장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아이를 잃었다. 예쁜 아이를 낳으면 업고 출근하겠다던 남편의 간절한 소원도 들어줄 수 없게 됐다”며 유산 경험도 털어놓았다. 김씨는 과거 윤 후보가 주도하던 국정원 댓글 수사 때 정신적 스트레스로 유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약 7분간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사죄” “죄송” “반성” 같은 표현을 수차례 썼다. 김씨 지인은 “빠르고 직설적인 평소 김씨 말투나 화법과 많이 달랐다”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이날 윤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도 했다. 이양수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은 “김씨가 선거운동을 하지 않겠다거나 영부인 역할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반성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김씨는 사과 시기와 방식을 두고 전날까지 고민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지인은 “김씨가 자기 이력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면서 윤 후보 지지율이 하락세로 접어드는 데 대한 심적 부담을 토로해왔다”며 “윤 후보는 전날까지도 김씨가 공개 석상에 서는 데 부정적이었지만 김씨가 더 늦기 전에 국민 앞에서 사과해야 한다고 설득해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종인 총괄 선대위원장의 역할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 측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신속한 사과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 후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제 아내가 국민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저도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