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3일 밤 9시쯤 서울 여의도 당사를 나서면서 기자들 앞에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종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이날 선대위 전면 개편 필요성을 제기한 데 대한 첫 공식 입장이었다. 윤 후보는 “선거에 대해 많은 분이 걱정하는 것은 오롯이 후보인 제 탓이고 제가 부족한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의힘 당직자들은 “윤 후보가 낮에 한때 주변에 크게 화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선거 승리를 바라는 지지자들을 의식해 마음을 가다듬고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윤 후보는 이날 낮에만 해도 김 위원장이 자신과 상의 없이 선대위 개편 방침을 전격적으로 밝히고 나오자 한때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인사는 “윤 후보가 한때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위원장의 선대위 전면 개편 구상 발표에 윤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로 급히 돌아와 이날 밤까지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윤 후보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도 “김 위원장 측이 윤 후보를 상대로 쿠데타를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 김 위원장의 사의 표명 혼선까지 빚어지면서 당은 혼돈에 빠졌다.
윤 후보는 이날 밤 당사를 나설 때까지 입장을 대변인을 통해서도 내지 않고 장고를 이어갔다. 이날 밤 9시 당사를 나서면서는 “우리 당 의원님들을 포함해 관심 있는 분들은 선대위에 좀 큰 쇄신과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계셔서 저도 연말·연초 이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많은 분의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선대위 쇄신에 대해 “선거도 얼마 안 남았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하게 여러분의 의견을 잘 모아서 빨리 결론을 내리고 선대위에 쇄신과 변화를 주고 새로운 마음으로 심기일전해 선거운동을 하겠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에선 한때 윤 후보가 김 위원장과 결별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하지만 윤 후보가 밤늦게 대국민 사과 뜻과 함께 선대위 개편에 나설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새해 들어 그가 밝힌 ‘변화’ 기조와 관련 있어 보인다. 윤 후보는 지난 1일 선대위 신년 인사회에서 “저부터 변하겠다”고 했다. 신발을 벗고 바닥에 엎드려 국민에게 절도 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윤 후보가 지지율 하락세의 원인이 태도에 있음을 이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후보를 향한 변화 요구를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도 이날 윤 후보에게 태도 변화를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오후 의원총회에서 “후보에게 ‘태도를 바꿔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윤 후보와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이 발언에 윤 후보 측 인사들 사이에선 “후보 권위와 리더십을 훼손하고 지지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이란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윤 후보는 직접 대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지인은 “윤 후보 스스로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죄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은 국민 앞에 자신을 낮춰야 할 때”라고 했다.
윤 후보는 작년 연말부터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는 언행을 해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윤 후보가 지난달 23일 호남을 방문해 국민의힘 입당을 두고 “부득이한 결정”이라고 한 것은 야권 지지층을, 지난달 29일 대구·경북을 찾았을 때 이재명 후보를 향해 “같잖다”고 표현한 것은 중도층 유권자의 거부감을 불렀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도 “윤 후보가 그간 연설하고 메시지를 내도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점을 시정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윤 후보 측 인사는 “선거를 처음 치러보는 정치 신인이 대선이란 큰 선거를 뛰게 되면 심리적인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면서 “당이 일사불란하게 후보 중심으로 뛰어줘야 할 국면에서 김 위원장이나 이준석 당대표도 윤 후보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