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젠더(gender·성별)’ 이슈가 여야 대선 운동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발표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한쪽 편만 들면 안 된다”며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자고 했다. 민주당 일부에서 “성별 갈등 부추기기”라고 반발하고 나오면서 여야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적은 데 이어 9일엔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이라고 적었다. 각각 7자와 10자짜리 단문 메시지로 공약을 발표한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게시물엔 9일 기준 약 3만3000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은 1만 건이 달렸다. 2030세대가 주로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엔 ‘윤 후보 지지 철회를 철회한다’는 글이 대거 올라왔다. 윤 후보 측에선 “20대 남성 반응이 특히 폭발적”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윤 후보가 최근 지지율 하락세, 특히 20대 남성 이반 상황을 뒤집기 위해 여가부 폐지 공약을 꺼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병사 월급 인상에 대해 “군 장병들과 만나보니 최저임금 보장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했다. 여성 공약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엔 “그간 준비했으나 발표하지 못한 공약을 정리해서 보여드릴 것”이라고 했다.
선대본부 관계자는 “원래 여가부 폐지는 경선 때부터 2030세대 참모들이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선대본부 축소 후 젊은 참모들의 발언권이 생기면서 윤 후보가 의견을 수용했다”고 전했다.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봉합한 윤 후보가 이참에 2030 남성 표심을 끌어오겠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윤 후보는 페이스북에 “여가부 폐지가 (내 입장이) 맞는다”며 “더 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젠더 갈등 입장을 묻는 질문에 “말 잘못하면 큰일 나는 수가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기성세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한쪽 편을 들면 안 된다”며 “‘여성’ 이러지 말고, ‘성평등가족부’로 하자”고 했다. 민주당 차원에선 공식 논평을 하지 않았다. 남녀 간 시각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인 만큼 여론 추이를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 여가부 폐지 등 성별 문제 대응 전략을 두고 민주당 안에선 반응이 갈리고 있다. 진성준 의원은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느닷없이 일곱 글자만 올린 것은 선거 전략의 일환”이라며 “말려들면 안 된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가 최근 페미니즘 이슈를 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에 출연한 것을 두고도 민주당에선 논란이 일었다. 김남국 의원은 “철저하게 선거 전략을 위해서 뛰어야 할 시기에 왜 ‘젠더 갈등’에 후보를 올라타게 했는지, 저희의 전략적 실수”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권인숙 의원은 “2030 여성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무척이나 소중한 일정”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모든 (남녀)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닷페이스와 비슷한 성향 방송인 ‘씨리얼’ 출연은 검토 끝에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후보는 이날도 닷페이스 출연 논란을 언급하며 “제가 거기 한 번 출연했다고 해서 지금 엄청나게 혼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도 경계론이 나온다. 김종인 전 총괄 선대위원장은 이날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일방 얘기만 듣고 결정하면 반대쪽 소리를 못 듣는다”며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여야 후보의 이런 움직임이 2030 성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젠더 이슈에 민감한 소수 강성 의견이 온라인에서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젠더 이슈를 둘러싼 여야 후보들 논쟁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씨는 “강남역 살인 사건, 혜화역 시위, 민주당 정치인들의 성 추문 등을 겪으면서 극대화된 젠더 갈등이 이번 대선을 통해 표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