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나 윤며들었다”(윤석열에 조금씩 마음을 빼앗겼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윤석열 찍겠다”
2030 여성 이용자 위주의 강성 친문(親文) 온라인 커뮤니티 ‘소울드레서’에 13일 올라온 글이다. 젊은 여성 중심의 친문 커뮤니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지를 대놓고 선언하거나, 윤 후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글이 잇따르고, 타 회원들이 거기에 호응하고 있다. 또 다른 여성 중심 커뮤니티 ‘쌍화차 코코아’도 비슷한 글이 줄지어 올라온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동시에 윤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두 카페는 문 정부 출범 초기 문 대통령 응원 문구를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올리는 이벤트를 주도했던 강성 친문 카페다. 또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지지세가 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정적으로 최근 카카오톡 지라시 등으로 돌기 시작한 이른바 ‘김건희 녹취록’이 이들을 움직였다. 김씨 실언으로 가득한 녹취 내용은, 기존 윤 후보 지지 세력인 보수층 입장에서는 ‘대형 악재’에 불과했지만, 친문 네티즌들의 눈은 지라시의 단 한 대목에만 꽂혔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조국 전 법무장관을 수사한 것이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을 잘 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대목이었다. 이때부터 표심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친문 여성 네티즌들이 “윤석열이야말로 진짜 친문” 등의 주장과 함께, 윤 후보의 과거 행적에서 ‘좋은 점’만 찾아내고 있다.
녹취의 기획·실행자인 열린공감TV마저 당황하는 모습이다. 14일 밤 페이스북에 ”문건이 너무 퍼지고 있다” “문건 속 워딩이 왜곡됐다” 등의 글을 올리며 “기다리자”고 했다.
◇親文카페의 尹계란말이 게시물, 포털 다음 인기글 1위
‘쌍화차 코코아’와 ‘소울드레서’는 국내 대표적 강성 친문 여초(여성 이용자 중심) 커뮤니티다. 2017년 네이버·다음 양대 포털에서 ‘고마워요 문재인’ ‘사랑해요 김정숙’ 등의 문구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린 이벤트도 이 두 커뮤니티가 주도했다. ‘조국 수호’ 집회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회원수는 각각 15만명, 14만명으로 타 대형 커뮤니티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회원 1인당 방문횟수·게시글수 등 활동량이 많고, 막강한 ‘화력’을 과시해왔다.
두 카페는 최근 낙담한 상태였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지지세가 강했지만, 그가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면 “이재명도, 윤석열도 싫다”는 식의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민심의 변화가 감지된 건 지난 12일. 이날 아침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제보자 이모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고, 저녁엔 이른바 ‘김건희 녹취’ 지라시가 카카오톡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민주당 후보 교체를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무섭다” “이낙연 (후보) 교체 없으면 무조건 윤석열 찍겠다” 등 글이 올라왔다.
그러다가 소울드레서에 ‘스탠팬에 계란말이 만드는 윤석열’ 게시물이 올라왔다. 윤 후보가 지난 9월 SBS ‘집사부일체’ 출연 당시 계란말이를 만드는 모습을 스틸 사진으로 이어붙인 게시물이었다. 방송된지 4개월이나 지난 게시물이었지만, 폭발적 반응이 따라왔다. 게시물 단 하나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13일 다음 카페 전체에서 ‘인기글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윤 후보는 음식이 팬 바닥에 들러붙어 요리 좀 한다는 사람 아니면 잘 안 쓰는 스탠팬으로 각 잡힌 완벽한 계란말이를 만들어냈다. 이를 본 회원들은 “그냥 일도 무식하게 잘하고, 살림도 무식하게 잘하고, 사랑도 무식미련하게 잘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스탠팬으로 계란프라이도 성공해 본 적 없는데. 얼마나 많이 해봤으면. 마음이 복잡하다”, “스탠 애호가인데 윤석열보다 못한다. 윤석열은 찐고수”, “살다살다 별 대선을 다 치르네. 계란말이에 표 주게 생겼다”, “문 대통령이 그냥 뽑은 게 아닌가 보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후 본격적으로 ‘윤며들기’(윤석열에 스며들기) 게시물이 쏟아졌다. 윤 후보가 유기견 보호단체 회원인 점, 유기견·유기묘를 포함해 4견(犬)3묘(猫)를 키우고 있는 점, ‘동물 진료비 표준화’를 언급한 점 등의 내용이 담긴 게시물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또 작년 7월 9일 ‘사시 9수’ 윤 후보가 노량진 고시촌에 남긴 “여러분이 걸어가는 길이 맞습니다. 여러분이 꾸는 꿈이 맞습니다” 방명록 글도 뒤늦게 “위로된다”, “진정성 있다”며 화제를 모았다.
친문 회원들의 ‘윤석열 다시보기’는 계속됐다. 이미 한참 지나간 과거 기사까지 뒤지며 ‘윤 후보가 문 대통령에게 충직했다’는 단서가 될 만한 대목을 찾아냈다.
2020년 ‘다주택자는 1주택만 남기고 처분하라’는 청와대 권고를 민정수석 등 대통령 최측근조차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상황에서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후보가 송파구 자택을 자진 처분한 대목, 책 ‘구수한 윤석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조국 일가 수사를 진행했다”고 말한 대목, 작년 11월 15일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된 후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대통령님하고 여사님하고 다 건강하십니까”며 안부를 물은 대목 등이 게시물로 제작돼 올라왔다.
◇열린공감TV, 한밤중 게시물 올려 “차분히 기다리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번 ‘통화 녹취’의 주체이자, ‘접대부 쥴리설’ 제기 등 반(反)윤석열 노선의 유튜브 채널인 ‘열린공감TV’가 진화에 나섰다.
이들은 14일 밤 페이스북에 녹취 내용이 요약된 법원 문건을 올리면서 “어디서 만든 문건인지 모르나 너무 퍼지고 있다” “워딩이 왜곡됐다” “비슷한듯 하지만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이어 “전체적 워딩이 잘못 전달되면 안된다. 즉 정확한 발언 내용이 아니다. 차분히 기다리자. 진실은 곧 드러난다”고 했다.
기존 윤 후보 지지자들조차 당황하고 있다. 윤석열 팬카페 ‘22C대한민국(윤석열 총장님 힘내세요)’ 회원들은 “긴급 여초 윤 후보님 지지선언”이라며 현재 벌어진 상황을 급하게 파악 중이다. 윤 후보 지지자들은 “표 다 끌어모았으면 좋겠다”, “이런 식의 통합을 이루다니”, “윤 후보가 2030 친문파, 6070의 대통합을 이뤘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반면 일부는 “저들은 언제든지 민주당 뽑을 수 있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