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와 홍준표 의원이 만찬 회동을 한 지 하루 만인 20일 양측이 공천 문제로 신경전을 벌였다. 홍 의원이 전날 만찬에서 윤 후보에게 3·9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을 전략 공천하자고 제안한 사실이 이날 알려졌다. 그러자 윤 후보 측 인사들은 홍 의원을 겨냥해 “구태 정치”라며 공세에 나섰고, 홍 의원은 “방자하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런 가운데 윤 후보는 이날 오후 최 전 원장을 만났다. 최 전 원장은 “정권 교체에 집중해야지 보궐선거에 출마한다고 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홍 의원은 전날 윤 후보와 만찬 직후 선거대책본부에 상임고문으로 합류하는 조건으로 ‘국정 운영 능력을 담보할 만한 조치’ ‘처가 비리 엄단 대국민 선언’ 등 두 가지를 제시했다고 공개했다. 그런데 이날 아침 “홍 의원이 윤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최재형 전 원장을 서울 종로에, 이진훈 전 대구 수성구청장을 대구 중남구에 전략 공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윤 후보 측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였다. 최 전 원장은 대선 경선 막판 홍 의원 지지를 선언했고, 이 전 구청장은 홍 의원 캠프 대구 선대위원장을 맡았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오전 열린 국민의힘 선대본부 회의에서 권영세 선대본부장은 “당 지도자급 인사라면 대선 국면이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마땅히 지도자로서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며 “구태를 보인다면 지도자로서의 자격은커녕 우리 당원으로서의 자격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홍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윤 후보도 기자들과 만나 “저는 공천 문제에 직접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홍 의원의 전략 공천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후보 주변에선 대선 승리에 보탬이 되어야 할 보궐선거 공천을 지분 나누기 식으로 해선 안 된다는 기류가 있다”라고 했다. 홍 의원이 전날 윤 후보에게 ‘처가 비리 엄단을 선언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도 윤 후보 측에선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준석 당 대표는 라디오에서 “가족 비리에 대해 이중잣대를 대지 않겠다는 것은 후보의 원래 원칙”이라며 “이것을 굳이 선언하는 것은 후보 입장에선 다소 불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홍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최재형은 깨끗하고 행정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며 “국민이 불안해하니까 종로에 공천하면 국정 능력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대선 전면에 나서야 (국정 운영 능력의) 증거가 된다”고 했다. 윤 후보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믿음을 유권자에게 주자는 취지에서 최 전 원장 공천을 제안한 것뿐이란 주장이다. 홍 의원은 그러면서 권영세 본부장을 향해 “자기들끼리 잿밥에만 관심이 있어서, 갈등을 증폭시킨다”며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고 했다. 홍 의원 측 관계자는 “전날 회동에선 윤 후보도 홍 의원 제안을 검토해보겠다는 뜻을 밝혔었다”며 “그런데 하룻밤 사이 비공개 회동 내용이 윤 후보 측을 통해 흘러나온 건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들이 홍 의원을 견제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윤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한 호텔에서 최재형 전 원장을 만났다. 윤 후보는 최 전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최 전 원장은 “정권 교체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입장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회동 직후 “최 전 원장은 (홍 의원과) 그런(공천) 대화를 나눈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윤 후보는 페이스북에 최 전 원장과의 회동 관련 기사를 올리고 ‘원팀정신’이라고 썼다. 이와 관련, 홍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내가 ‘윤핵관’들에게 결재를 받고 선대본부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 있는데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선대본부에 들어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 관계자는 “홍 의원이 윤 후보를 직접 거론하며 파국을 선언하지는 않은 만큼 합류 여지는 남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