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경기지사 재직 시 도청 공무원이었던 A씨가 이 후보 측근인 배모씨의 지시를 받고 이 후보 아내 김혜경씨의 약 대리 처방, 음식 배달, 옷장 정리 등 개인 심부름을 했다고 폭로했다. 심부름 중에는 쇠고기를 구매해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이 후보 사택으로 배달하는 일도 포함됐다. A씨는 도 회계 규정을 피하기 위해 개인 신용카드로 쇠고기 값을 선결제한 뒤 이튿날 이를 취소하고 도청 법인카드로 재결제하는 편법을 썼다고도 했다. 민주당은 A씨의 첫 폭로가 나온 후 닷새가 지난 2일까지 “허위 사실”이라고 했지만, 이날 저녁 김씨와 배씨는 결국 사과문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부인 김혜경씨가 27일 오전 경남 통영시 소재 한 굴 작업장을 찾아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01.27. /뉴시스

2일 KBS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가 경기지사였던 작년 4월 당시 도청 총무과 소속 5급 공무원인 배씨는 비서실 소속 7급 공무원이었던 A씨에게 “고깃집에 소고기 안심 4팩을 이야기해 놓았다. 가격표 떼고 랩 씌워서 아이스박스에 넣어달라고 하라”며 이를 이 후보 자택인 ‘수내동’에 갖다 놓으라고 지시했다. 배씨는 작년 6월에도 A씨에게 “내일 샐러드 3개 초밥 회덮밥 오후에” “사모님이 내일 초밥 올려달라고 그랬다”라고 텔레그램·통화 지시를 했다. A씨는 김씨 심부름으로 물건을 살 때 주로 자신의 개인 카드로 먼저 결제한 뒤 나중에 법인카드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점심 시간 등에 업소를 다시 찾아가 카드를 바꿔서 재결제했다. 작년 3월부터 11월까지 두 사람의 9개월 치 통화 녹음에는 이렇게 카드를 바꿔 결제하는 내용이 열 차례 넘게 등장한다. 배씨는 작년 6월 A씨에게 이 후보 아들의 병원 퇴원 수속을 지시하며 도청이 발급한 이 후보 명의의 복지카드와 아들의 신분증을 주며 병원비를 결제하라는 심부름도 시켰다.

김씨의 공무원 심부름 의혹은 지난달 28일 SBS가 처음 보도했다. SBS 보도에 따르면 A씨는 “다른 비서가 (김씨 대신) 처방받은 약을 (이 후보) 집으로 배달하고, 음식 배달, 자택 냉장고와 속옷, 양말, 셔츠 정리 같은 허드렛일까지 도맡았다”며 “일과의 90% 이상이 김씨 관련 자질구레한 심부름이었다”고 했다. 배씨가 ‘사모님 약을 알아봐 달라’고 하면 A씨가 경기도청 의무실에서 다른 비서 이름으로 처방전을 받아 김씨의 집에 약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A씨는 배씨로부터 ‘김씨가 탄 차를 앞질러 갔다’ ‘김씨가 비를 맞게 차를 바짝 대지 않았다’는 등의 질책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현재 퇴직한 상태다.

고향 안동 찾은 이재명·김혜경 부부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1일 아내 김혜경씨와 함께 고향인 경북 안동을 방문해 안동김씨 화수회(일가끼리 모이는 모임)에서 설 인사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A씨에게 이런 일을 지시한 것으로 지목된 배씨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이 되기 전부터 김씨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부터는 이 후보를 따라 성남시, 경기도청에서 근무했고, 최근까지도 이 후보 선대위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이 후보 부부는 2016년 배씨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SBS 보도 직후 배씨는 “공무 수행 중 후보 가족을 위한 사적 용무를 처리한 적이 없다”며 “허위 사실 유포로 선거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다분하다. 좌시하지 않겠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민주당도 배씨 입장을 전하며 2일까지 “허위 사실”이라고 했다. 전재수 의원은 “이 후보와 배우자는 공적 업무의 사적 역할을 지시하거나 개입한 적이 없다는 게 캠프의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배씨가 A씨에게 “힘드시게 해서 너무 죄송하다” “제가 다 잘못한 일이고 어떻게든 사죄하고 싶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추가로 보도되자, 배씨는 2일 저녁 “제가 이 후보 부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상식적인 선을 넘는 요구를 (A씨에게) 했다”며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자신이 알아서 한 일이란 취지다. 김씨의 약을 대리 처방해 전달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선 “제가 복용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이 처방받은 약을 구하려 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했다. 자신이 먹을 약인데 김씨의 약이라고 속여 처방받게 했다는 주장이다. 배씨는 “이 밖에도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이 더 있을지 모른다”고도 했다.

김씨는 배씨 입장문이 나온 지 30분 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서 송구하다”고 했다. 김씨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었다. 그동안 고통을 받았을 A 비서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고 했다. 이어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라며 “공과 사를 명료하게 가려야 했는데 배씨와 친분이 있어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상시 조력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아들 대리 퇴원 수속이나 법인카드 유용 등 의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야당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배씨가 ‘자신이 먹을 약’이었다고 한 데 대해 “본인이 필요한 약이었는데 왜 김혜경씨 집으로 배달이 되나”라고 했다. A씨는 이 후보 집 문에 약을 걸어놓은 사진을 배씨에게 보고했다고 했다. 같은 당 원일희 대변인은 “김씨 대리 처방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며 “지방자치단체장의 부인이 공무원에게 사적으로 일을 시키는 건 불법이고 행정안전부가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최지현 수석부대변인은 “이재명 후보 아들의 퇴원 수속은 유령이 한 일이냐”며 “경기도 법인카드로 소고기를 사먹은 것은 국고 손실 범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