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 측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측 주요 인사들이 후보 단일화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왔다. 대선 후보 등록(2월 13~14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가 공론화 단계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윤 후보와 가까운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윤 후보가 안철수 후보 같은 사람이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이끌어주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윤 후보는 “안 후보를 특정해 한 말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야권에선 “공동 정부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국민의힘 소속 정진석 부의장은 6일 본지 통화에서 “지난달 21일 윤 후보의 충남 천안 방문 차량에 동승했을 때 윤 후보가 안철수 후보 같은 분이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책임지고 이끌어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며 “윤 후보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고 했다. 정 부의장은 “윤 후보가 단일화 문제는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면서 “단일화 문제는 당대표 등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해선 안 되고 후보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윤 후보의 대선 1호 공약이다. 정부 조직을 디지털 기술과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디지털 플랫폼화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IT 기업을 창업해 운영한 안 후보와 단일화할 경우 구성될 공동 정부의 한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 원희룡 정책본부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필요성을 언급하며 “때가 됐다”고 했다. 원 본부장은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오는 14일을 단일화 협상 데드라인으로 제시하면서 국민의힘·국민의당 공동 정부 구성에 대해 “당연히 가능하다. 못 할 게 뭐가 있나”라고 했다.
중진 인사들이 단일화 필요성과 함께 공동 정부 구상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하자 야권에선 “국민의힘 쪽에서 단일화에 시동을 거는 것 같다”는 관측이 나왔다. 국민의당에서도 이날 최진석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이 언론 통화에서 단일화 문제와 관련해 “정치는 생물이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최 위원장은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단일화 불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런 그의 변화된 발언은 단일화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안철수 후보 후원회장을 맡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단일화는 정권 교체뿐 아니라 집권 후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단일화가 안 되면 앞으로 아무것도 안 된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날 “국민의힘 선대본부는 후보 단일화에 대해 거론한 적 없고 향후 계획을 논의한 바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본부장은 “단일화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원희룡 본부장 인터뷰에 대해 “개인 의견일 뿐 선대본부 입장과는 아무 관련 없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도 이날 정진석 부의장 발언과 관련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담당해갈 부총리·장관급으로 기업 경험도 있고, 행정·정치 경험도 있는 분이 맡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한 적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 후보를 특정해 말한 게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후보 등록이 다가오면서 양측의 단일화 논의는 본격적으로 가열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동안 윤·안 후보 측 인사들이 지지율 우위 확보를 위해 ‘단일화는 없다’는 자세를 취한 측면이 있다”며 “상당수 여론조사가 ‘단일화=필승’을 가리키고 지지층에서 단일화를 요구하는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두 후보가 계속 침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다가왔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야권 일각에선 “윤·안 후보가 ‘승리 연합’을 위해 전격 회동하는 방식으로 협상 물꼬를 틀 가능성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안철수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단일화에 대한 생각을 묻자 “국민의힘 내에서 의견이 달라서 서로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 무슨 말을 하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