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향해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느냐”며 집권 후 관련 사안에 대한 수사를 시사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매우 불쾌하다”며 이례적으로 공식 입장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정치 보복으로 들릴 수 있어 매우 당황스럽다”고 했고, 여당에선 “어디 감히 문재인 정부에 적폐란 말을 하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윤 후보는 “내가 한 것은 정당한 적폐 처리고, 남이 하는 건 보복이라는 그런 프레임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윤 후보는 9일 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집권하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도 하겠다고 했다. 다만 문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관여하지 않겠다”며 “시스템에 따라서 하겠다. 검찰 수사는 사법부의 견제, 통제를 받으면서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윤 후보는 이날 후보 직속 조직인 정권교체동행위원회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서도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윤 후보는 “이 정부는 자기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라고 하는데, 저는 그것이 사기라고 생각한다”며 “노무현 정부는 무조건 우리한테 이익이 되면 따라야 된다는 식의 조직 논리는 없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그게 아주 강하다”고 했다.
그동안 윤 후보는 “정치 보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날도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순택 대주교를 만나서 ‘통합과 희망’ 을 강조했다. 이틀 전 언론 인터뷰에서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보복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건 죄 지은 민주당 사람들 생각일 뿐”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은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라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 때리기를 통해 보수 지지층의 확고한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야권의 한 인사는 “단일화를 앞두고 ‘문재인 대(對) 윤석열’ 대결 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단일화가 ‘반문연대’이기 때문에, 안철수 후보와 여권의 단일화도 사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윤 후보 발언에 “매우 부적절하고 불쾌하다”며 “아무리 선거지만 서로 지켜야 할 선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대선 관련 언급을 자제해왔지만, 이날 문 대통령이 비공개로 주재한 회의에서 이 같은 입장을 내기로 결정한 것을 알려졌다. 문 대통령도 상당히 기분 나빠했다는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는 “어디 감히 문재인 정부 적폐란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문재인 정부에 적폐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윤 후보에게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긴급 회견을 열고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 보복을 선언했다”며 “문재인 정부를 향해 보복의 칼을 겨누는 것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망국적 분열과 갈등의 정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적폐 수사 발언은) 상식적인 이야기”라며 “(문재인 정권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면 불쾌할 일이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면서도 “내가 한 것은 정당한 적폐 처리고, 남이 하는 건 보복이라는 그런 프레임은 맞지 않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내 이전 정부에 대한 적폐 청산 수사를 이어간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야권 일부에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수사 언급이 지지층 결집보다는 중도층의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