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20여 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선거 판이 출렁거리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안 후보에게 “깔끔한 사퇴”를 요구하는 사이, 민주당이 빈틈을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 후보 측에서 내각제 개헌 등을 고리로 단일화를 제안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는 9일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지만, 민주당에선 “빅 픽처(큰 그림)” “정치 개혁” 등을 언급하며 단일화 가능성을 계속 띄웠다. 민주당 내부에선 안 후보와 단일화가 불발되더라도 다자 구도 유지를 통한 야권 분열을 노릴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 측은 “민주당이 적극적인 것은 맞지만, 구체적 제안은 없었다”고 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총괄특보단장인 안민석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안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지난 한 달 동안 일들이 진행돼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보수나 진보에 관심이 없고 과학기술 전문가이자 의학도로서 실용적 측면을 강조하는 분”이라며 “함께 링을 만들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빅 픽처가 기대된다”고 했다. 이 후보 최측근인 정성호 의원도 이날 “안 후보가 추구하는 정치적 노선과 가치와 공약들,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 정치 세력의 상황들을 본다면 오히려 이 후보와 더 가깝지 않으냐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동안 정치권의 이목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안 후보의 야권 단일화 가능성에 쏠려있었지만, 실제로 물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은 이 후보 측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에서 상상 이상으로 우리에게 단일화하자고 달려들고 있다”며 “그에 비하면 지금 윤석열 후보 쪽이 보여주는 모습은 교만에 가깝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 측은 정식 제안은 아니지만 의원내각제 개헌과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총리 재임 시 헌법상 각료 제청권 보장 등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이재명·안철수의 권력 분점을 제안한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안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는 지지율 반전을 위한 최후의 카드가 될 수 있다. 단일화에 성공하면 컨벤션 효과를 등에 업고 막판 뒤집기 가능성이 열리고, 실패하더라도 안 후보의 독자 출마를 촉진해 1987년 대선과 같은 ‘다자 구도’가 재연될 수 있다. 당시 민정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야권 표를 갈라 먹으면서 36.6%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됐다. 민정당의 선거 전략이 바로 ‘3자 필승론’이었다. 안민석 의원도 이날 “지금 35년 만에 87년 선거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며 “캠프 내에서도 두 이견(단일화·3자 구도) 사이에 토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윤 후보는 이날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서 안 후보와 단일화에 대해 “서로 신뢰하고 정권 교체라는 방향이 맞으면 단 10분 안에도 커피 한 잔 마시면서도 끝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단일화 협상은 안 한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도 “정권 교체를 바라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방식은 (안 후보가) 깔끔하게 사퇴하고 지지 선언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10분 만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다소 일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만나자고 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실제 안 후보 측은 윤 후보가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이 후보와 단일화를 모색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이 후보와의 단일화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후보는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민주당 세력과 함께하며 갈등을 빚다가 2015년 탈당했던 트라우마가 있고, 지금까지 현 여권을 비판하며 정권 교체를 외쳤는데 이 후보와 손을 잡을 명분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