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20여 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선거 판이 출렁거리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안 후보에게 “깔끔한 사퇴”를 요구하는 사이, 민주당이 빈틈을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 후보 측에서 내각제 개헌 등을 고리로 단일화를 제안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는 9일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지만, 민주당에선 “빅 픽처(큰 그림)” “정치 개혁” 등을 언급하며 단일화 가능성을 계속 띄웠다. 민주당 내부에선 안 후보와 단일화가 불발되더라도 다자 구도 유지를 통한 야권 분열을 노릴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 측은 “민주당이 적극적인 것은 맞지만, 구체적 제안은 없었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3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KBS 공개홀에서 열린 지상파 방송 3사합동 초청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있다./뉴스1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총괄특보단장인 안민석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안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지난 한 달 동안 일들이 진행돼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보수나 진보에 관심이 없고 과학기술 전문가이자 의학도로서 실용적 측면을 강조하는 분”이라며 “함께 링을 만들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빅 픽처가 기대된다”고 했다. 이 후보 최측근인 정성호 의원도 이날 “안 후보가 추구하는 정치적 노선과 가치와 공약들,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 정치 세력의 상황들을 본다면 오히려 이 후보와 더 가깝지 않으냐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동안 정치권의 이목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안 후보의 야권 단일화 가능성에 쏠려있었지만, 실제로 물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은 이 후보 측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에서 상상 이상으로 우리에게 단일화하자고 달려들고 있다”며 “그에 비하면 지금 윤석열 후보 쪽이 보여주는 모습은 교만에 가깝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 측은 정식 제안은 아니지만 의원내각제 개헌과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총리 재임 시 헌법상 각료 제청권 보장 등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이재명·안철수의 권력 분점을 제안한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안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는 지지율 반전을 위한 최후의 카드가 될 수 있다. 단일화에 성공하면 컨벤션 효과를 등에 업고 막판 뒤집기 가능성이 열리고, 실패하더라도 안 후보의 독자 출마를 촉진해 1987년 대선과 같은 ‘다자 구도’가 재연될 수 있다. 당시 민정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야권 표를 갈라 먹으면서 36.6%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됐다. 민정당의 선거 전략이 바로 ‘3자 필승론’이었다. 안민석 의원도 이날 “지금 35년 만에 87년 선거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며 “캠프 내에서도 두 이견(단일화·3자 구도) 사이에 토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화 나누는 이재명·이낙연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대통령 후보와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이 후보 배우자 김혜경씨 논란에 대해“진솔하게 인정하고 겸허하게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반면 국민의힘 윤 후보는 이날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서 안 후보와 단일화에 대해 “서로 신뢰하고 정권 교체라는 방향이 맞으면 단 10분 안에도 커피 한 잔 마시면서도 끝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단일화 협상은 안 한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도 “정권 교체를 바라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방식은 (안 후보가) 깔끔하게 사퇴하고 지지 선언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10분 만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다소 일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만나자고 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실제 안 후보 측은 윤 후보가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이 후보와 단일화를 모색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이 후보와의 단일화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후보는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민주당 세력과 함께하며 갈등을 빚다가 2015년 탈당했던 트라우마가 있고, 지금까지 현 여권을 비판하며 정권 교체를 외쳤는데 이 후보와 손을 잡을 명분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