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과 관련해 포괄적으로 사과했지만, ‘위법’ 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밝히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오른쪽)씨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과잉의전' 의혹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왼쪽은 지난 2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허위경력' 의혹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뉴스1

김씨는 이날 총 7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네 차례 고개를 숙였다. ‘책임지겠다’는 말을 4번, ‘죄송하다’ 2번, ‘제 불찰’을 2번 언급했다. 그는 “공직자의 배우자로서 모든 점에 조심해야 하고 공과 사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 했는데 제가 많이 부족했다”며 “앞으로 더 조심하고 경계하겠다”고 했다. 심부름을 수행한 A씨에게도 사과한다고 했다. 김씨는 이날 기자회견 배경에 대해 이 후보가 “진심으로 사과드리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러나 ‘법인카드 유용을 포함해 어디까지 인정하는가, 어떤 부분을 사과하는건가’라는 질문에 “지금 수사와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며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그 결과)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인카드 사적 이용 약 대리처방 아들의 병원비 결제·퇴원수속 대행 관용차 사적 이용 5급 공무원 배모씨 불법 채용 의혹 등 불법 소지가 제기된 의혹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었다.

김씨는 제보자 A씨에게 사적 심부름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배씨와의 관계에 대해선 “성남시장 선거 때 만나서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던 사이”라면서 “오랜 인연이다 보니 때로는 여러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입장문에서 “배씨와 친분이 있어 도움을 받았지만 상시 조력을 받은 게 아니다”라고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그동안 “김씨가 지시한 게 아니다”라며 배씨의 ‘과잉 충성’이 빚은 사고라고 해명해왔다. 김씨는 이날 회견에서도 자신의 지시 여부는 말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가 9일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당사에 들어가고 있다. 김씨는 이날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사과했지만‘법인카드 유용’등 위법 혐의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는 밝히지 않았다. /이덕훈 기자

민주당 선대위 박찬대 수석대변인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입장문을 낸 것으로는 부족하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 본인의 입으로 사과드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진정성을 헤아려 달라”고 했다. 제기된 의혹의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데 대해서는 “(A씨가) 90일 근무하는 동안 80일치 (녹취)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하나 해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김씨 회견 후 선대위에서는 “(윤석열 후보 아내) 김건희씨와 비교되는 진솔한 사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명백한 불법 의혹이 제기된 김건희씨는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며 “반성과 책임의 무게가 다른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선대위 남영희 대변인은 한 방송에서 김씨 회견에 대해 “어떻게 더 사과하느냐” “최대치로 사과한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은 김혜경씨가 말한 감사·수사가 ‘셀프’로 진행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지난 3일 김씨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면서 경기도 감사를 자청했는데, 감사는 이 후보가 지사 시절 임명한 경기도 감사관(민변 출신 변호사)이 맡고 있다. 검찰 수사는 이 후보의 대학 후배가 지검장으로 있는 수원지검에 이첩됐다가 다시 경찰로 넘어갔다.

민주당은 당초 김혜경씨의 ‘불법 의전’ 의혹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금명간 이 후보가 다시 사과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 연휴쯤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보였던 분위기가 반전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그런데 이날 오전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이 첫 회의를 주재한 뒤 “진솔하게 인정하고 겸허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하면서 김씨가 ‘직접·당장’ 사과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처음에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 부적절했다”며 “당사자가 직접 나서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처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선대위는 조만간 김씨가 선거 지원 활동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2월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내 김혜경 씨가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