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낙연 전 대표 캠프 공보단장이었던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21일 돌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경선 당시 정 전 실장은 방송과 소셜미디어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인물이다.
정 전 실장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이제 저는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도우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최근 양쪽을 다 잘 아는 지인의 주선으로 윤 후보를 만났고 윤 후보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당혹스러웠지만, 결국은 수락했다”며 “윤 후보를 돕기로 한 것은 바로 차악(次惡)을 선택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도덕성과 개혁성을 겸비한 진보 진영의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이 ‘전과4범-패륜-대장동-거짓말’로 상징되는, 즉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행태를 저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혹여라도 그분들이 ‘이재명 지지는 선(善), 윤석열 지지는 악(惡)’이라고 강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천박한 진영논리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또 “혹자가 말했듯이 저는 예측 불가능한 ‘괴물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식물 대통령’을 선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 전 실장의 이같은 변심에는 지난 18일 이낙연 선대위원장의 ‘순천 유세’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낙연 위원장의 또 다른 측근인 이병훈 의원은 21일 연합뉴스에 “지난 18일 순천 유세에서 이 위원장이 이 후보 지지 발언을 하는데, 이 후보가 온다고 갑자기 음악을 틀어버린 사건이 있었다”며 “실무자의 실수인데 해당 영상이 SNS에 퍼지며 이 위원장 지지자들의 반발이 커졌다. 정 전 실장은 이 사건을 빌미로 결단을 내린 뒤 지난 19일 이 위원장에게 통보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이 위원장은 ‘그러면 되겠느냐’며 아주 간곡히 만류했는데 요지부동이었다”고 했다.
이낙연 위원장은 18일 오전 전남 순천 연향패션거리에서 이재명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러나 이날 이 위원장이 연설을 하던 도중 ‘이재명 선거송’이 흘러나와 흐름이 끊기는 일이 발생했다. 이 위원장은 현장 스태프들을 한 번 쳐다보고서는 “설마 국민의힘이 여기 왔다 간 건 아니죠?”라고 농담을 한 뒤, 자연스럽게 연설을 이어갔다.
그러나 몇 분 뒤, 또 이 위원장의 말이 끊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위원장이 시민들에게 “이재명을 세 번 외쳐달라”고 요구했고, 시민들이 “이재명! 이재명! 이재명!”을 외쳤다. 이어 이 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려하자 또 ‘이재명 선거송’이 나왔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썰렁해졌다. 이 위원장이 스태프들에게 노래를 꺼달라는 듯한 손가락 제스처를 취했지만, 노래는 계속 흘러나왔다. 곧이어 이재명 후보가 무대에 올랐다. 이 위원장이 이 후보를 소개하려고 마이크를 입에 댔으나, 이번엔 마이크가 말썽이었다. 여기에 사회자가 눈치 없이 시민들에게 사진 퍼포먼스를 하자고 제안했고, 이 위원장은 뻘쭘한 듯 점퍼 주머니에 주섬주섬 마이크를 넣었다.
당시 촬영된 영상은 온라인상에 빠르게 퍼졌고, 이낙연 위원장 지지자들은 ‘이낙연 수모 영상’이라며 분개했다. 지지자들은 “너무 속상하다”, “누가 원팀을 저렇게 대우하냐”, “예의가 없네”, “영상 차마 못 보겠다”, “원팀 운운할 거면 최소한 제대로 대접해라”, “이건 그냥 망신주기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비난 여론이 커지자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19일 페이스북에 “순천 유세 과정에서 이낙연 선대위원장의 발언이 끊기는 일이 있었다”며 “이는 진행상 실무자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었으나, 부적절한 상황이 연출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어 “이낙연 선대위원장께서도 문제삼지 않고 진행상의 오류로 이해하고 넘어가 주셨던 만큼, 앞으로는 결코 이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엄중하게 조치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