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사진) 대통령 후보가 지난 19일 전북 전주 전북대학교 앞 유세에서 “코로나19를 차버리겠다”며 발차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지난 15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자 주먹으로 어퍼컷을 하는 장면. /뉴스1·남강호 기자

소셜미디어(SNS)에 괴상한 선거 포스터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자발적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포스터 한복판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서 있다. 그의 뒤로 ‘국민과 하나로! 더불어 승리로!’라는 구호가 보인다. 그런데 이 후보 앞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가즈아 이재명!”을 외치고 있다.

이 포스터는 SNS에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윤석열 후보가 “나이쓰~ 이재명” “야! 너두 지지할 수 있어”라며 이재명 후보를 응원한다는 점은 똑같다. SNS에서 반응은 극단으로 갈린다. 이재명 후보 지지자는 “윤석열이 응원단장? 통쾌하다”며 폭소하고, 윤석열 후보 지지자는 “어퍼컷 세레모니가 성공하자 훔쳐 썼다”고 냉소한다.

이재명 후보 지지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선거 홍보 포스터. /페이스북 캡처

대선 후보들이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캠프는 각 지역 특산물을 넣은 포스터에 지난 15일 부산 유세에서 처음 사용해 화제가 된 어퍼컷을 장착해 호응을 얻었다. 예컨대 강원 횡성이라면 “횡성 한우가 키운 윤석열의 힘으로 정권 교체! 나 아니면 누가 대통령 한우~”라고 쓰고 어퍼컷을 하는 식이다. 모델과 멘트, 특산물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다는 평을 받으며 온라인으로 퍼지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CBS 인터뷰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밈을 생성하는 끼가 있다”며 “대중이 열광하는 분위기 속에서 적절한 본인의 밈을 찾았다”고 했다.

지역 특산물에 윤석열 후보의 어퍼컷이 장착된 선거 포스터. /페이스북 캡처

상징적인 액션인 세리머니는 유세장 분위기를 띄우고 ‘밈’이나 ‘짤’로도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젊은 층이 호응한다.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의 어퍼컷이 화제가 되자 하이킥으로 맞섰다. 이 후보는 지난 19일 전북 전주 유세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요 쬐깐한 거, 확 한번 차불겠습니다”라며 분노의 발차기를 해 박수를 받았다. 민주당은 이 하이킥을 ‘부스터 슛’으로 명명했다. 어퍼컷을 견제하기 위한 하이킥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밈을 둘러싼 다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경영 캠프가 발끈했다. 허 후보는 19일 페이스북에 “공약 표절도 모자라 무궁화 발차기까지 따라 하는군요. 출처는 밝혀주세요”라며 원조와 짝퉁을 비교한 발차기 사진을 올렸다. 자신이 발차기 밈의 원조라며 이 후보의 발차기를 짝퉁으로 규정한 것이다.

허경영 후보의 발차기와 이재명 후보의 하이킥. /허경영 후보 페이스북

밈의 파괴력은 지난해 초 SNS를 강타한 ‘샌더스 놀이’가 증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장에 나타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소탈한 모습이 밈으로 확산된 것이다. 한국인들도 기발한 패러디로 밈을 창작해 이 놀이에 동참했다. 대선 후보들이 유권자를 사로잡을 전파력 강한 밈을 생성하는 데 사활을 거는 이유다. 이 후보 지지자가 윤 후보의 어퍼컷까지 가져와 포스터를 만든 것은 그 어퍼컷을 ‘힘 있는 밈’으로 인정한 이적행위라는 분석도 있다.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경희대 교수는 “사람들이 모든 문화적 정보를 똑같은 효율로 전파하지는 않는다”며 “인류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뭔가를 더 잘 기억하고 저장했다가 남들 앞에서 더 잘 표현하도록 진화했다”고 말했다. ①콘텐츠(내용)가 실익이 있거나 ②유명인이 선택했거나 ③빈도가 높은 쪽으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전 교수는 “정책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는 비호감 대선이라 눈길을 끌 목적으로 밈에 더 의존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밈(meme)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1976)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 누군가를 모방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밈’이 전달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로 옮아가면서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문화 전달 혹은 모방의 단위라는 뜻으로 ‘문화 유전자’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