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후보자의 선거 공보물 발송 작업을 시작했다. 법이 규정한 후보의 인적사항과 재산상황, 세금체납실적 및 전과기록과 그에 대한 소명 등을 담은 공식 공보물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공보물에는 이른바 ‘검사(檢事) 사칭 사건’에 따른 전과(前科) 기록과 함께 그에 대한 소명이 이렇게 담겼다.
‘이 후보를 방송PD가 인터뷰하던 중 담당검사 이름과 사건 중요사항을 물어 알려주었는데, 법정다툼 끝에 결국 검사 사칭을 도운 것으로 판결됨’.
이러한 소명은 과거 법원이 증거를 토대로 재구성해 확정 판결한 사실관계와는 차이가 있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후보)이 PD와 공모해 검사의 자격을 사칭하여 그 직권을 행사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공범의 질문에 대답하고 알려준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모했다’는 뜻이다.
법원이 판단한 사실관계는 이렇다.
2002년 5월10일 오전, 이재명 당시 분당파크뷰특혜분양사건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사무실에 KBS 시사프로그램 ‘추적60분’ PD 등 제작진이 찾아왔다. 제작진은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취재 중이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이 후보는 방송사 PD로 하여금 수원지검 A 검사의 자격을 사칭하여 마치 A 검사가 B 시장을 상대로 고소 사건에 관해 전화로 그 의혹 및 배후관계 등에 조사하는 것처럼 하려고, B 시장에 대한 질문 사항을 사전에 PD에게 개략적으로 설명하면서, PD의 질문에 “수원지검에 A검사가 있는데 시장도 그 이름을 대면 잘 알겁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PD와 B 시장 간 통화가 시작됐다. 이때 이 후보는 가끔 카메라쪽으로 가 스피커에 귀를 대고 B 시장의 답변 내용을 들으면서 PD에게 B 시장에 대한 추가 질문 사항을 메모지에 간단하게 적어주거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보충 설명했다고 판결문에는 나온다.
이 같은 사실 관계는 1심에서 대법원 최종심까지 한번도 뒤집히지 않고 유지됐고, 확정됐다. 이 후보는 유죄 판결과 함께 150만원 벌금형도 확정 선고 받았다.
◇법원 “李, PD와 공모해 사칭, 넉넉히 인정돼”
조선닷컴은 이 후보 측에 ‘공보물의 소명 내용이 법원에서 확인된 사실과 다르지 않으냐’고 물었다. 이 후보 측은 “소명서는 허위가 아니다”며 다음과 같이 해명해왔다.
“2017년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이 후보가 선거공보물 및 TV 토론 등을 통해 ‘방송 PD가 인터뷰하던 중 담당 검사 이름과 사건 중요사항을 물어 알려주었는데 법정 다툼 끝에 검사사칭을 도운 것으로 판결됐다’, ‘PD가 사칭하는데 옆에서 인터뷰 중이었기 때문에 그걸 도와줬다는 누명을 썼다’는 취지의 기재 및 답변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으나 모두 무죄 판결받음.”
이번 선거 공보물 소명서의 표현은 2017년 경기도지사 선거때에도 사용했고, 그때 이미 한 차례 법원으로부터 ‘문제없음’ 판결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확인 결과, 그러한 해명이 사실과 달랐다.
우선 이 후보 측 해명에 등장하는 ‘재판과 무죄판결’이란, 검사 사칭 사건 유죄 판결로부터 14년 뒤에 벌어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2017년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이 후보는 TV토론에서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자(현 국민의힘)로부터 검사사칭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가 한 게 아니고 피디가 사칭하는데 제가 옆에 인터뷰 중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걸 도와주었다는 누명을 썼습니다”, “저는 검사를 사칭해 전화를 한 일이 없습니다. 피디가 한 거를 옆에서 인터뷰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제가 도와 준 걸로 누명을 썼습니다”고 발언했다가,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한 당시 판결문을 보면, 해명과 달리, 이 후보는 TV토론 발언이 허위 사실이란 이유만으로 기소됐고, 선거공보물의 소명 표현은 법원의 판단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 재판에서 이 후보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법원은 이 후보가 TV토론 중 “누명을 썼다”고 말한 데 대해 “억울하다는 평가적 표현일 뿐, 사실이냐 허위사실이냐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단순히 누명을 썼다는 표현을 한 것만 가지고 피고인이 검사 사칭 사건 재판 과정에서 했던 사실적인 주장을 발언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피고인이 검사를 도운 것으로 된 판결이 억울하다는 것은 구체성이 없는 평가적 발언에 가까워 그 자체로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적혔다.
그러나 공보물의 소명 표현은 “누명을 썼다”는 발언과는 달리, 사실관계를 설명해놨다.
◇野 “李 소명서는 허위 사실”… 선관위 “후보가 책임”
이러한 공보물이 뿌려진 데 대해 야당은 반발했다. 김진태 국민의힘 이재명비리검증특별위원장은 이날 조선닷컴 취재에 “선거 공보물의 소명서는 허위 사실”이라며 “선관위는 이 내용을 민주당과 확인하지도, 수정하지도 않았다. 선관위가 노골적으로 민주당을 돕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우리는 후보들이 제출한 공보물이 지정한 요건을 갖췄는지만 확인한 후 발송할 뿐, 공보물 내용에 관한 책임은 후보 측에 있다”고 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당선되거나 누군가를 당선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경우’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후보자가 선거법과 관련해 징역 또는 100만원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때에는 그 당선은 무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