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식 선거 공보물에 적어 배포한 이른바 ‘검사(檢事) 사칭 전과’의 소명 내용에 대해,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2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카페 ‘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선거법은 후보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경우, 당선 무효가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검사 사칭 사건이란 2002년 ‘분당파크뷰특혜분양사건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이 후보가 KBS PD와 공모, 당시 성남시장에게 검사를 사칭해 전화를 걸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 이 후보는 최근 전국 유권자 가정에 발송한 법정 선거 공보물에서 ‘방송PD(A씨)가 이 후보를 인터뷰하던 중 담당검사 이름과 사건 중요사항을 물어 알려주었는데, 법정다툼 끝에 결국 검사 사칭을 도운 것으로 판결됨’이라고 소명했다. 자신이 범죄를 주도한 것은 아니란 취지였다.
하지만 당시 1~3심 법원 판결에는 공보물 내용과 달리, ‘이 후보가 처음부터 PD와 공모했다’는 취지의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여기에 담당 PD가 입을 열어, 이 후보 공보물 소명 내용을 다시 한 번 부인한 것이다.
23일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 응한 A씨는 “이 후보의 공보물에 ‘내가 이 후보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적혔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판결문에 나온 내용이 사실이다. 판결문은 나 혼자의 증언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당시 이 후보의 사무실에 있던 카메라맨과 오디오맨의 진술과 증언에 따라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이 후보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라는 질문에 A씨는 “판결문을 보면 그게 아니란 게 나와 있다. 이 후보 측에서 부인하고 있지만, 이 후보 측의 소명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 판결문이 사실”이라며 “이 후보 측이 또 다시 부인하면 추가 대응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 후보 공보물의 소명은 과거 법원이 증거를 토대로 재구성해 확정 판결한 사실관계와도 차이가 있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후보)이 PD(A씨)와 공모해 검사의 자격을 사칭하여 그 직권을 행사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공범의 질문에 대답하고 알려준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모했다’는 뜻이다.
법원이 판단한 사실관계는 이렇다. 2002년 5월10일 오전, 이재명 당시 분당파크뷰특혜분양사건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사무실에 KBS 시사프로그램 ‘추적60분’ 담당 PD A씨 등 제작진이 찾아왔다. 제작진은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취재 중이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이 후보는 A씨로 하여금 수원지검 B 검사의 자격을 사칭하여 마치 B 검사가 C 시장을 상대로 고소 사건에 관해 전화로 그 의혹 및 배후관계 등에 조사하는 것처럼 하려고, C 시장에 대한 질문 사항을 사전에 A씨에게 개략적으로 설명하면서, A씨의 질문에 “수원지검에 B 검사가 있는데 시장도 그 이름을 대면 잘 알겁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A씨와 C 시장 간 통화가 시작됐다. 이때 이 후보는 가끔 카메라 쪽으로 가 스피커에 귀를 대고 C 시장의 답변 내용을 들으면서 A씨에게 C 시장에 대한 추가 질문 사항을 메모지에 간단하게 적어주거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보충 설명했다고 판결문에는 나온다.
이 같은 사실 관계는 1심에서 대법원 최종심까지 한번도 뒤집히지 않고 유지됐고, 확정됐다. 이 후보에겐 유죄 판결과 함께 150만원 벌금형 확정 선고가 내려졌다. A씨는 당시 구속된 뒤 1심에서 벌금 300만원, 2심에서 선고 유예 처분을 받았다.
조선닷컴은 이 후보 측에 ‘공보물의 소명 내용이 법원에서 확인된 사실과 다르지 않으냐’고 물었다. 이 후보 측은 “소명서는 허위가 아니다”며 다음과 같이 해명해왔다.
“2017년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이 후보가 선거공보물 및 TV 토론 등을 통해 ‘방송 PD가 인터뷰하던 중 담당 검사 이름과 사건 중요사항을 물어 알려주었는데 법정 다툼 끝에 검사사칭을 도운 것으로 판결됐다’, ‘PD가 사칭하는데 옆에서 인터뷰 중이었기 때문에 그걸 도와줬다는 누명을 썼다’는 취지의 기재 및 답변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으나 모두 무죄 판결받음.”
이번 선거 공보물 소명서의 표현은 2017년 경기도지사 선거때에도 사용했고, 그때 이미 한 차례 법원으로부터 ‘문제없음’ 판결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확인 결과, 그러한 해명이 사실과 달랐다.
우선 이 후보 측 해명에 등장하는 ‘재판과 무죄판결’이란, 검사 사칭 사건 유죄 판결로부터 14년 뒤에 벌어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2017년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이 후보는 TV토론에서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자(현 국민의힘)로부터 검사사칭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가 한 게 아니고 피디가 사칭하는데 제가 옆에 인터뷰 중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걸 도와주었다는 누명을 썼습니다”, “저는 검사를 사칭해 전화를 한 일이 없습니다. 피디가 한 거를 옆에서 인터뷰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제가 도와 준 걸로 누명을 썼습니다”고 발언했다가,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한 당시 판결문을 보면, 해명과 달리, 이 후보는 TV토론 발언이 허위 사실이란 이유만으로 기소됐고, 선거공보물의 소명 표현은 법원의 판단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 재판에서 이 후보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법원은 이 후보가 TV토론 중 “누명을 썼다”고 말한 데 대해 “억울하다는 평가적 표현일 뿐, 사실이냐 허위사실이냐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단순히 누명을 썼다는 표현을 한 것만 가지고 피고인이 검사 사칭 사건 재판 과정에서 했던 사실적인 주장을 발언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피고인이 검사를 도운 것으로 된 판결이 억울하다는 것은 구체성이 없는 평가적 발언에 가까워 그 자체로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적혔다.
그러나 공보물의 소명 표현은 “누명을 썼다”는 발언과는 달리, 사실관계를 설명해놨다.
이러한 공보물이 뿌려진 데 대해 야당은 반발했다. 김진태 국민의힘 이재명비리검증특별위원장은 이날 조선닷컴 취재에 “선거 공보물의 소명서는 허위 사실”이라며 “선관위는 이 내용을 민주당과 확인하지도, 수정하지도 않았다. 선관위가 노골적으로 민주당을 돕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우리는 후보들이 제출한 공보물이 지정한 요건을 갖췄는지만 확인한 후 발송할 뿐, 공보물 내용에 관한 책임은 후보 측에 있다”고 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당선되거나 누군가를 당선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경우’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후보자가 선거법과 관련해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때에는 그 당선은 무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