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이튿날이자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전국 곳곳에서 여러 형태의 선거관리 부실 논란이 벌어졌지만,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당일 선관위 사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은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야당은 “선거관리의 총책임을 진 중앙선관위원장이 사전투표 당일 대혼란이 벌어졌는데도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민의힘 유경준·김웅·김은혜·이영 의원 등은 5일 오후 10시쯤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를 항의 방문했다. 참관인들도 없이 확진·격리자의 투표용지가 투표함으로 운반되는 등 투표소 곳곳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 사례가 속출하자 야당 의원들이 실태 파악을 하기 위해 선관위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중앙선관위 청사에는 노 위원장은 없고, 사무총장 등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선관위 측에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위원장은 왜 없느냐’고 따져 물었다”면서 “그런데 선관위는 ‘노 위원장은 비상근직이라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원장은 법적으로 비상임인 것은 맞는다. 그러나 코로나 감염병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하루 20만~25만명 발생하는 가운데 전례 없는 확진·격리자 사전투표가 실시되는 당일 선거관리 총책임자가 비상근이라는 이유로 출근조차 하지 않은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이날은 전국 투표소 곳곳에서 선거관리 부실 논란이 제기돼 여야(與野)가 일제히 우려를 표하며 신속한 실태 파악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조해주 사태’로 중앙선관위 2인자이자 정원 9명 가운데 유일한 상근 선관위원인 상임위원도 현재 공석이고, 야당 추천 몫 선관위원도 공석인 비상(非常) 체제였다. 이에 청와대를 비롯해 여야와 언론은 반복적으로 각별한 선거 관리를 강조해왔다. 여야는 최근 확진자 투표를 위해 급히 뜻을 모아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도 했다.
전직 고위 선관위 관계자는 “노정희 위원장이 비상근이더라도 선거관리 책임의 위중함을 생각해 늦게라도 선관위 사무실에 나가 사무총장 등에게 실태 보고를 받으며 신속히 대응책 마련에 나섰어야 했다”면서 “노 위원장이 선거 부실의 책임을 아래로 떠넘기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처사를 한 것 같다”고 했다.
김웅 의원은 “위원장이 없는 상태에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등에게 선거 부실 관리 논란에 대해 물었더니 ‘우리는 법과 원칙대로 했다’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 은평구 신사동 투표소에서 기호 1번 이재명이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확진자 유권자에게 지급된 이유를 물었더니 ‘관리인이 투표용지 3장을 수거해서 2장만 투표함에 넣고 1장은 안 넣고 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했다. 이어 “’관리인이 2장만 넣은 것이라는 것은 어떻게 확인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것까지 불신하면 어쩌라는 거냐’라는 식으로 답했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5일 야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에도 부실 선거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못하다 다음날인 6일 오전 10시가 다 돼서야 “선거 관리가 미흡했다. 송구하다”는 입장을 냈다. 입장문 명의는 ‘중앙선관위’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6일 오후 4시쯤 중앙선관위 사무차장 등을 국회로 불러 사전투표 기간 벌어진 선거 부실 실태를 보고받고 오는 9일 본 투표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확진자 투표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는 사전투표에 참여한 확진·격리자 규모도 따로 집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초박빙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갈린다면 관리 부실 논란이 나온 확진·격리자 투표분이 향후 정치적 후폭풍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