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는 오랫동안 여권(與圈) 불모지로 여겨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광주에서 받은 12.72% 득표율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래 보수 대선 후보가 이 지역에서 받은 최다 득표율이다. 득표율로 따지면 사실상 참패지만, 일각에선 광주와 호남의 지역 장벽이 무너지는 신호라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텃밭으로 통하는 광주에서 국민의힘 빨간색 점퍼를 입은 3명의 20대가 구의원에 동시 출마했다. 광주 동구 가 기초의원 박진우(29) 후보, 북구 라 기초의원 곽승용(28) 후보, 남구 나 기초의원 정현로(23) 후보다 . 이들은 모두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곽승용 후보는 대선 때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으로 일하다 현재 국민의힘 부대변인을 맡고 있다. 복합쇼핑몰 유치 공약을 윤석열 캠프 내에서 최초로 제안하며 주목받았다. 박진우 후보는 국민의힘 광주광역시당 청년본부 부위원장을 맡았고, 조선대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정현로 후보는 국민의힘 광주청년보좌역 특보로 일했다.
“도대체 왜 국민의힘으로 여기에 나왔냐.” 세 후보가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이들은 가장 먼저 부모님, 친구들의 반대부터 감수해야 했다. 박진우 후보는 본지 통화에서 “3대째 광주 동구에 살아온 만큼 부모님 모두 민주당 골수팬이기 때문에, 처음엔 아들의 변심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며 “국민의힘으로 출마해야 하는 이유를 PPT로 만들어 부모님에게 보여드렸다”고 했다. 부모님은 아들 유세를 지켜보며 마음을 열었고 최근 국민의힘 당원이 됐다. 정현로 후보는 거리 유세 중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호통을 듣는 경우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선거 운동하면 돈 준다고 이러냐” “국민의힘은 썩었다”는 핀잔이였다. 곽승용 후보는 선거 현수막이 잇따라 훼손됐다.
선거 자금도, 인력도 부족하다. 정현로 후보는 책자용 선거 공보물을 자필로 쓴 호소문 1장으로 대체했다. 경쟁 후보들이 7~8장의 공보물을 만든 것과 대비된다. 대학생인 그는 방학 땐 군산 조선소에서 막노동을 하고, 평일 저녁 땐 곱창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거 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그는 “저 포함 총 5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골목을 다니는데, 차가 없다 보니 하루 45㎞까지 걷기도 했다”고 했다. 박진우 후보는 아버지 친구가 유세차 운전 자원봉사를 해주고 있다. 광주에서 간판 광고 회사에 다니는 박 후보는 이번 선거를 위해 두 달 치 휴가를 썼다. 곽승용 후보는 “선거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SNS 라이브를 통해 소통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며 “공보물 디자인도 직접 하는 등 하루에 3~4시간 쪽잠을 자고 있다”고 했다.
“광주 말고 다른 지역을 나가는 게 당선 확률이 더 높다”는 권유도 많았다. 국민의힘(전신 포함)이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2006년 이후 광주·전남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한 경우는 단 한 차례(2014·당시 새누리당 박삼용 광산구의원)에 불과하다. 이들은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곽승용 후보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만큼 누구보다도 지역을 잘 아는 일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현로 후보는 “‘고여있는 물은 항상 썩는다’는 어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긴 채 유세하고 있다”며 “광주를 독식해온 민주당은 광주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시민들에게 사죄해야 된다”고 했다. 이들은 광주 복합 쇼핑몰 유치 지원, 광주에 하나뿐인 노후한 광주패밀리랜드를 새로 단장해 호남권을 대표하는 복합 테마파크로 조성하겠다는 공약 등을 내걸었다. 박진우 후보는 “설사 떨어지더라도 다음에도 다시 광주에서 도전하겠다”며 “민주당은 어느새 광주 기득권이 됐다. 기득권과 싸워온 노무현 정신을 광주에서 펼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