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왼쪽) 개혁신당 대표와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와 당사에서 각각 합당 철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둘은 함께한 지 열흘 만에 갈라섰다./뉴스1

개혁신당 이낙연·이준석 공동대표가 20일 합당 파기를 선언했다. 개혁신당은 지난 15일 기준 현역 의원 5명을 확보해 선관위 정당 보조금 6억6000만원을 받았다. 돈을 받고 닷새 만에 당이 깨져버린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전날 “의석수가 5석 미만이 될 경우 보조금을 전액 반납할 것”이라고 했지만, 중앙선관위는 “초유의 사태라 보조금을 돌려받을 법적 절차도 없다”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선거철마다 정당이 떴다방 식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한국 정치의 단면이 또 나타난 사례”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래픽=백형선
20일 서울 여의도 새로운미래 당사에서 개혁신당 이낙연 공동대표는 “신당 통합 좌절로 여러분께 크나큰 실망을 드렸다. 부실한 통합 결정이 부끄러운 결말을 낳았다"고 말하며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의 통합이 결렬됐다고 선언했다.

이낙연 대표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의 새로운미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 통합 좌절로 크나큰 실망을 드렸다. 부실한 통합 결정이 부끄러운 결말을 낳았다”며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는 이준석 대표를 향해 “통합을 깨거나 저를 지우기로 일찍부터 기획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정인을 낙인찍고 미리부터 배제하려 했다”고 했다.

같은 날 낮 12시, 이준석 대표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참담한 마음으로 국민들께 사과드린다”며 “할 말이야 많지만 애초에 각자 주장과 해석이 엇갈리는 모습이 국민들 보시기에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관리할 수 있다고 과신했던 것은 아닌지, 앞으로에 대한 호언장담보다는 겸허한 성찰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새로운미래 이낙연 대표와의 통합 결렬'과 관련해 “참담한 마음으로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의 전직 대표였던 이낙연·이준석 두 사람이 최근 탈당 후 제3지대로 나올 때부터 ‘낙준 연대’ 성사는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지역 기반, 연령, 정치 노선 등이 물과 기름 같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양측은 ‘일단 현역을 확보해 기호 3번과 정당 보조금을 얻어내자’는 공통의 이익을 목표로 일단 손을 잡았다.

양정숙 의원이 지난 14일 개혁신당에 입당한 것 역시 선관위 선거 보조금 지급 기준일이 하루 뒤인 15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역이 5석 미만이면 보조금이 수천만 원에 불과하지만, 5석 이상 20석 미만의 정당이 되면 정치자금법에 따라 보조금이 크게 늘어난다. 개혁신당은 양 의원 입당으로 약 6억원을 더 받았다.

양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 공천을 받고 당선됐으나 이후 부동산과 세금 의혹으로 제명돼 ‘무소속 비례’로 활동하다 21대 국회 회기를 석 달여 남겨 놓고 개혁신당에 합류했다. 비례대표는 본인이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당에서 제명돼야 의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개혁신당 한 지도부 인사는 “양 의원에게 ‘새로운미래로 가기를 원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명해주겠다’는 뜻을 전달했는데, 양 의원이 개혁신당에 남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선관위 보조금은 이준석 ‘법적 대표’의 개혁신당에 지급이 완료된 상태다. 하지만 김종민 의원 탈당으로 현역 4석이 되면서 불과 닷새 만에 억대 보조금 교부의 근거가 사라졌다. 이준석 대표는 “법률상 반납 절차가 미비하다면 공적인 기부라든지 좋은 일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정성을 보이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반납한다고 해도 받을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기부 역시 법률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이 보조금을 정당 운영과 선거 등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내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이번 개혁신당 사태는 꼼수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와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은 20일까지도 법적 합당이 완료되지 않았다. 새로운미래 창준위가 중앙당 등록을 완료한 뒤 개혁신당 등과 재창당하는 절차가 남아있음에도 이들은 지난 9일 ‘정치적 합당 선언’부터 서둘렀다. 설 연휴 밥상에 일단 합당 소식을 화젯거리로 올리고 보자는 정치 공학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양향자 원내대표, 이낙연·김종민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금태섭·조성주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조응천·이원욱 원칙과상식 의원이 설 연휴 첫날인 9일 서울 용산역에서 귀성인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스1

그런 다음 선거 보조금 지급 기한인 15일에 맞춰 새로운미래 김종민, 원칙과상식 이원욱·조응천 등 현역이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에 일단 들어가는 ‘선도 입당’ 편법을 썼다. 이낙연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개혁신당에 입당한 적이 없다”며 “법에 따라 합당이 이뤄지면 일괄 입당 방식을 취하는데 그 단계까지 안 갔으니 당적 변경이 없다”고 했다. 결국 이낙연 대표는 개혁신당에 입당하지도 않은 채로 11일간 공동대표로 활동했다는 얘기다.

양측에선 “법적 합당을 하지 않았으니 엄밀히는 통합 합의 파기이지 분당은 아니다” “일단 약혼식을 했는데 결혼식을 준비하다가 파혼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합당 합의라는 요란한 이벤트를 벌인 뒤 꼼수로 선관위 보조금까지 받아놓고 정치적 표현과 법적 절차에 차이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국민 우롱”이라고 했다.

선거철마다 보조금 지급, 기호 부여 기준일에 맞춘 ‘현역 끌어모으기’는 정치권에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개혁신당 사태는 정치적 목적을 합의하기 전에 기호 3번이나 억대 보조금 같은, 선거에 유리한 수단부터 장악하려다가 발생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양측 역시 “통합을 설 연휴 이전에 이루고 싶었다”(이낙연) “지나친 자기 확신에 오만했다”(이준석)고 반성했다.

한편 양측은 결별 당일인 20일에도 총선 지휘 전권, 김종인 공천관리위원장 추대,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 입당 등 논란과 관련, 합당 파기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고 손가락질을 이어갔다. 정치권에선 “한국 정치사에 기록될 희극적 장면”이라고 했다.

☞정당보조금

정당을 보호·육성하고자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정당 운영비 지원을 위해 분기별로 지급되는 ‘경상보조금’과 선거가 있는 해에 선거 비용 지원을 위해 지급되는 ‘선거보조금’이 있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총액의 50%를 정당별로 균등 배분하고, 5석 이상 20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엔 총액의 5%씩을, 5석 미만 또는 의석이 없는 정당 중 최근 선거에서 득표 수 비율 요건을 충족한 정당에는 총액의 2%씩 지급한다. 그러고도 남는 예산의 절반은 의석수 비율, 나머지 절반은 지난 총선 득표 수 비율에 따라 지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