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비명횡사(非明橫死) 공천 논란이 당내 친문(親文)·친명(親明)계 간 정면충돌로 번지고 있다. 문재인 청와대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28일 이재명 지도부가 서울 중·성동갑에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공천했음에도 지역구인 왕십리역 현장 유세를 강행했다. 당내에선 ‘왕십리 반란’이란 말도 나왔다. 이 유세에는 친문 홍영표·송갑석·윤영찬 의원도 동행했다. 친문계에서는 침묵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고, 친명계는 “문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다. 민주당이 사실상 심리적 분당(分黨)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종석 전 실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이달 초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양산 회동’을 거론하며 “이 대표가 굳게 약속한 명문 정당과 용광로 통합을 믿었다”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이 대표에게 임 전 실장 등 친문 핵심 등을 거론하며 ‘살펴봐 달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녁 왕십리역 유세에서 임 전 실장 주변에 모인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전현희 오면 머리채 잡아” “임종석이 성동에 말뚝 박았느냐” 등 분열 양상을 보였다.
설훈 의원은 이날 탈당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는 연산군처럼 모든 의사 결정을 자신과 측근과만 결정하고 이에 반하는 인물들을 모두 쳐내며, 자신에게 아부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 있다”며 “이 대표에게 민주당은 그저 방탄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 그저 자신이 교도소를 어떻게 해야 가지 않을까만 생각한다”고 했다.
공천 배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홍영표 의원도 이날 CBS라디오에서 “(이재명) 지도부가 윤석열 정권 심판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친문·비명, 반대파 심판에 골몰하고 있다”며 “5~10명까지 탈당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나가는 걸 오히려 뒤에서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컷오프가 확정된다면 “용납할 수 없다”고도 했다. 윤영찬 의원도 현 비명횡사 공천 논란을 놓고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민주당이 통진당 후신 진보당에 지역구(울산 북구)를 양보하면서 공천 배제된 이상헌 의원도 이날 탈당했다. 그는 입장문에서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며 “진보당 윤종오 후보에게 경선을 제의했지만 답변을 회피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이날 서울 홍제동 헬스장에서 당 행사를 마친 뒤 “갈등과 반발은 필연적”이라며 “세대 교체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역들의 연쇄 탈당엔 “경기하다가 질 것 같으니까 경기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입당도 탈당도 자유”라고 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신인이 노쇠한 정치인을 밀어내고 교체된다. 이것이 시대 흐름”이라고, 서은숙 최고위원은 “안개가 걷히고 난 이후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 측근인 김지호 전 당대표 정무조정부실장은 “임종석·윤영찬 선배님, 문재인 대통령님 이름 말고 자기 이름으로 정치하실 때 된 것 아닌가요?”라며 “갈등의 중심에서 문 대통령님은 부디 빼달라”고 했다. 야당 핵심 관계자는 “수권 정당을 위해 꼭 필요한 인적 교체 과정을 문재인·이재명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다선 현역을 사실상 공천 배제했다. 임혁백 공관위원장은 이날 당사 브리핑에서 서울 성북을(기동민), 인천 부평을(홍영표), 경기 오산(안민석), 경기 용인갑(비례대표 권인숙), 청주 서원(이장섭), 청주 청원(변재일)을 전략 선거구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안민석 의원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친명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며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라고 했다. 변재일 의원 역시 “모욕감과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며 “계파 균형을 위해 희생돼야 하느냐”고 했다. 친명 다선 의원 컷오프를 지렛대 삼아 운동권 주류인 홍·기 의원 컷오프를 확정하면 집단 탈당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