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공천이 ‘비명횡사’ 논란 속에 마무리 국면에 들어서면서 친문·비명 등 구주류 인사들의 ‘탈민주당’이 시작됐다.
‘하위 20% 통보’에 반발해 탈당한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4일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로 했다. 김 부의장은 정세균계로 분류된다. 김 부의장은 3일 “한동훈 (비상대책) 위원장은 저에게 진영 논리에 매몰돼 있는 여의도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민의힘에 입당해 함께 정치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진영 논리보다 생활 정치를 위한 의정 활동을 주로 해왔기에 한 위원장의 주장에 십분 공감했다”고 밝혔다.
김 부의장은 지난달 19일 현역 평가 ‘하위 20%’ 통보를 받고 “모멸감을 느낀다”며 탈당했고, 2주 만에 여당행을 결정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그를 현재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갑에 공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표는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지만 함께하지 못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면서도, “(김 부의장이) 채용 비리 부분에 대해 소명하지 못해 50점이 감점돼 0점 처리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부의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2020년 제가 채용 비리에 연루된 것같이 기사가 나왔으나 사실이 아니고 경찰·검찰로부터 연락 온 적도, 조사도 없었다”며 “20대 국회에서 끝난 일로 21대 국회를 평가한다니, 이재명 대표가 다급했나보다”라고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김영주가 0점이면 이재명은 마이너스 200점”이라고 했다.
서울 중·성동갑에서 컷오프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탈당을 포함한 여러 선택지를 열어두고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실장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동민·홍영표 의원 컷오프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었고 자신의 재심 요구를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 대표의 속내는 충분히 알아들었다”고 썼다. 같은 날 새로운미래 이낙연 대표와도 만났다. 이 대표는 이날 광주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예고했으나 “민주 세력의 결집과 확장을 위해 사전에 긴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잠정 연기하기도 했다. 임 전 실장과의 회동을 비롯해 다른 민주당 인사들과도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관계자는 “새로운미래 측은 임 전 실장의 합류를 위해 모든 조건들을 다 열어두고 내려놓는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홍영표 의원도 탈당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는 3일 페이스북에 “이들(탈당파)을 마지막까지 밀어내버린 건 ‘이재명당’을 향한 야욕이 만든 비극”이라며 “억울하고 분노하고 아쉬워하는 분들과 마음을 모으고 있다. 마침내 일어설 시간이 다가온다”고 했다.
앞서 ‘하위 10%’ 평가 통보에 반발한 설훈 의원은 민주당 낙천 인사들과 새로운미래가 합치는 이른바 ‘민주연합’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이낙연)와 비서실장(임종석), 원내대표(홍영표) 등이 주축이 되는 그림이다. ‘친명당’이 된 민주당과 윤석열 정부 양쪽을 비판하는 ‘진짜 민주당’을 표방한다는 취지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지난 1월 이낙연 대표와 ‘원칙과 상식’ 의원 그룹의 잇단 탈당 때보다 이번 이탈 흐름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 중진 의원은 “너무 우악스럽게 진행된 이번 공천에 대해 수도권·중도층이 돌아선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잘려나간 친문 인사들이 나가 깃발을 들면 기존 민주당 지지층이 상당히 몰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종석 전 실장은 가까운 의원들과도 연락을 자제하며 장고에 들어갔다고 한다. 임 전 실장 측 인사는 “이재명 대표는 지난 2년간 밥 한번 먹자는 요청을 무시했다”며 “그의 뜻은 충분히 이해했고, 임 전 실장도 2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공천 국면만 해도 ‘탈당은 선택지에 없다’는 분위기였지만, 재심 요청이 최종 불발된 이후로는 기류가 다소 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대표와의 회동이 공개된 것도 이 같은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탈당파 그룹은 호남과 야당 강세 지역을 중심으로 “해볼 만하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들과 가까운 한 의원은 “임종석·홍영표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이 안 되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위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호남과 수도권의 야당 강세 지역을 집중 공략하는 방향으로 총선 전략을 짜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번 공천 파동으로 충청·강원 등 중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충청 지역 의원은 “안 되겠다 싶어서 예비 후보 등록을 앞당겼다”고 했고, 강원도당에서는 “1석 이상 건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는 이재명·한동훈은 뒤로 빼고 윤석열(심판론)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당내 갈등 탓에 이재명의 나쁜 모습이 부각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다만 탈당이 소규모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민석 상황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상당한 교체와 변화의 결과” “진통과 소리는 있었다”며, 여당과 비교해 민주당 공천이 낫다고 평가했다. 한 지도부 의원은 “이제 공천이 끝났으니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대진표가 짜이면 당내 갈등은 관심이 사라지고 여야 대결이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