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야권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시민 단체 몫 비례대표 후보 여성 2명에 대해 사실상 재추천을 요구한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전날 공개 오디션에서 선발된 청년겨레하나 대표 출신 전지예 후보와 여성 농민 출신인 정영이 후보가 사실상 진보당 진영에서 ‘우회 상장’한 후보라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야권 비례 위성정당은 지난달 21일 당선 안정권으로 분류되는 비례 20번 안에 진보당 3명, 새진보연합 3명, 시민 단체 측 4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현재대로라면 진보당 계열이 비례에서만 최대 5석을 챙겨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10일 밤 소집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 시민 단체 몫 비례대표 선출 결과를 두고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전지예·정영이 두 사람은 진보당 후보로 나왔어야 하는데 일종의 눈속임을 한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재추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대부분의 지도부 인사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이재명 대표도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들 후보에 대한 비례대표 당선권 추천이 관철될 경우 ‘수용 불가’ 입장을 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백형선

민주당은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 단장을 지낸 박홍근 의원을 통해 이 같은 우려를 시민 단체 측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통화에서 “당초 합의 시점에 전달했던 우리의 기대나 요청, 콘셉트가 맞지 않는 후보들이 있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인사라면 다른 분으로 추천을 요청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민주당 상황실장인 김민석 의원도 “각 당과 시민사회가 비례 후보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게 검증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현재 선발된 후보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민주당 내부 판단은 내려졌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당초 야권 연대에 녹색정의당 등이 빠지게 되면서, 시민 단체 측에 민생·경제를 부각하는 차원에서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소상공인, 장애인 등을 발탁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통합진보당의 후신 격인 진보당 계열 인사들에게만 ‘꽃길’을 깔아줬다는 비판이 당내에서도 나온 것이다. 한 지도부 인사는 “정당의 자율성, 합의 정신 등을 고려해 진보당에도 3석을 배려한 것이지만 이런 꼼수·위장 출마로 공짜로 초과 의석을 가져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상 조국혁신당이 강세를 보이는 상황도 공유됐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종북과 손잡았다’는 논란 탓에 우리 지지층이 이탈해 조국당을 찍겠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례대표 선출 절차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재투표 혹은 백지화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시민 단체 측에 일부 후보의 공정성·적합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만큼, 자체 판단으로 차점자로 후보를 바꾸는 등 조치를 취해줄 것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공개 오디션에 오른 여성 후보 6명 중 최대 4명이 진보당 계열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후보 교체가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애초에 시민 단체가 뽑는 ‘국민 후보’ 선출에 지원한 사람이 44명밖에 되지 않았던 것부터 바로잡았어야 했다”며 “너무 작은 풀(pool)에서 선발하다 보니 특정 세력의 개입이 용이한 구조였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다만 더불어민주연합 지도부가 공천심사위원회 역할도 겸임하는 만큼, 이 단계에서 다시 검증 절차를 밟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당, 새진보연합의 합의문에는 ‘모든 비례대표 후보자는 (가칭)민주개혁진보연합이 마련하는 심사 등의 공천 관리 절차를 통해 국민 눈높이에서 철저히 검증한다’는 항이 포함돼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소수당이나 시민 단체 추천의 경우 철저한 검증 자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연합 대표 등 지도부를 민주당 출신이 맡기 때문에 다시 한번 ‘거름망’을 댈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연합 관계자는 “당적 여부나 주요 활동들에 대해 서류 심사부터 전면 재검증에 들어갈 수 있다”며 “현재 시점에서는 전지예 후보가 비례 1번에 확정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의 약진으로 더불어민주연합의 ‘당선 안정권’ 의석수도 달라진 만큼 기호 부여 순번 자체를 재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