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해병대원 사망 사건 관련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공수처 수사 중 호주로 떠난 이종섭(전 국방장관) 호주 대사에 대해 “공수처는 즉각 소환을 통보해야 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으로 논란이 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에 대해서는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여권 내부에서 두 사안이 4·10 총선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는 기류 속에도 대통령실의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자,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을 향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경기 성남분당을에 출마한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도 이날 페이스북에 “이종섭 즉시 귀국, 황상무 자진 사퇴가 국민 눈높이”라며 “지체하지 마시라”는 글을 올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직전 홍보수석이 대통령실을 향해 이런 요구를 할 정도로 수도권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의 요구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종섭 대사는 야당을 중심으로 ‘도피성 해외 출국’이라는 공세가 확산하는 점을 감안해 조기 귀국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의 소환 통보가 없더라도 자진 귀국해 공수처의 조사를 자청해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황상무 수석 논란과 관련해서는 주말 동안 여론 추이를 살폈지만 인사 조치를 하지는 않았다. 여권 일각에서는 “황 수석이 사퇴하지 않으면 여당과 대통령실이 다시 충돌하는 양상으로 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여당과 대통령실이 물밑 대화로 해법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과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언급’ 논란이 확산하면서 국민의힘에서 우려 목소리가 계속 커지고 있다. 4·10 총선이 3주 남짓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원인을 제공해 ‘정권 심판론’ 확산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도권 출마 후보들을 중심으로 “인사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대통령실의 가시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측은 “원칙대로 대응하고 있다” “여론을 살피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는 상황이다.
주말 사이 논란이 확산하자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17일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종섭 대사 관련 문제는 총선을 앞두고 정쟁을 해서 국민들께 피로감을 드릴 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즉각 소환하고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황상무 수석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말씀은 이미 드린 바 있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발언이고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당내 중도 성향 인사, 수도권 출마자들도 한 위원장의 발언과 비슷한 주장을 했었다. 함운경(서울 마포을)·최원식(인천 계양갑)·조광한(경기 남양주병) 등 한때 더불어민주당에 몸담았다가 이번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한 후보 9명도 전날 공동 입장문을 내고 이 대사가 즉시 자진 귀국해 ‘해병대원 사망 사건 관련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공수처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대통령실과 행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게끔 이 사안을 처리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인 안철수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서 “황 수석은 군부의 명령에 따른 ‘회칼 테러’를 상기시키며 특정 언론을 겁박했다”며 “시대착오적인 시민사회수석에 대한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국방장관 출신인 이 대사는 지난 4일 호주 대사로 임명된 이후 출국 금지 조치 해제 절차를 거쳐 지난 10일 출국했는데, 야당은 “호주 대사가 아니라 도주 대사”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황 수석은 지난 14일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 내가 (군)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한 발언으로 여권 일각의 사퇴 요구를 받았지만, 그는 전날 사과문만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이 대사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야당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정치 공세”라며 적극 반박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오히려 공수처가 작년 12월 이 대사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처음 한 뒤 두 차례 이를 연장해 놓고도 이 대사 소환 조사 등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출국 금지가 오히려 이 대사의 기본권을 제한한 부당한 조치”란 입장이다. 이 대사는 이날 방송된 KBS 인터뷰에서 “현시점에서 본다면 공수처와 이야기된 것은 4월 말 공관장 회의 기간에 일정을 잡아서 가는 것으로 조율이 됐다”면서도 “공수처가 조사하겠다면 내일이라도 귀국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사퇴 요구에 대해선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황 수석 논란과 관련해 주말 동안 여론 추이를 살폈지만 인사 조치를 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발언이 부적절했지만 기자들과의 비공식 식사 자리에서 한 발언인 데다 본인이 사과한 상황이라 현재로선 인사 조치까지 해야 하는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서울 지역 출마자는 “반민주적, 반언론적 발언을 한 황 수석을 경질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자기 참모 문제에 대해선 미온적이란 인상을 줘 여권의 이재명·조국 비판 명분을 약화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