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사의를 수용했다. 또 ‘해병대원 사망’ 사건으로 민주당이 공수처에 고발한 이종섭 주호주 대사도 21일 자진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제가) 다 해결됐다”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공동 운명체”라고 말했다. 4·10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여권에 ‘황상무·이종섭’ 리스크가 불거진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수습에 나서자 한 위원장이 이를 통해 당정 갈등이 해소됐다고 직접 발표하면서 봉합이 이뤄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6시 49분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은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발표했다. 황 수석이 지난 14일 MBC 기자 등과의 점심 자리에서 1988년 벌어졌던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사실이 보도돼 논란이 불거진 지 엿새 만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새벽에 황 수석 사표 수리 사실을 발표하라는 윤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한 위원장은 오전 경기도 안양에서 열린 현장 선거대책위 회의에서 “황 수석은 오늘 사퇴했고 이 대사는 곧 귀국한다”며 “저희는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절실하게 민심에 반응할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그러면서 “우리는 수도권의 민심에 더 민감하고 책임감 있게 반응해야 한다”며 “손끝에 느껴지는 작은 온도까지도 무겁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그때그때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사와 황 수석 문제가 해결됐다고 한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권이 총선에서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앞에서 한 위원장과 대통령실이 갈등을 봉합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대통령실도 선거와 관련해 논란에 휘말리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서도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운명 공동체”라며 “그렇게 해야 폭주하는 이재명 사당과 종북 세력이 이 나라 주류를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이 대사의 즉각 귀국과 황 수석의 자진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이 조치에 나서지 않으면서 수도권 친윤계 후보들까지 가세해 대통령실의 조치를 촉구했다. 여권 내에서 위기감이 커지면서 올 초 김건희 여사 문제로 충돌했던 윤·한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 위원장으로선 이종섭·황상무 악재 해소가 급선무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날까지 ‘원칙 대응’ 기조를 고수했던 윤 대통령은 이날 아침 대통령실을 통해 황 수석 교체와 이 대사 조기 귀국 방침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주말인 지난 16~17일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중심이 돼 논란을 조기 수습해야 한다고 윤 대통령에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인사는 “참모 건의에 윤 대통령은 즉답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후 대통령실이 18일 오전 15분 간격으로 두 차례 서면 입장을 내며 두 사람 논란에 대해 반박하면서 윤 대통령이 이·황 두 사람에 대한 조치를 거부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엔 황 수석 자진 사퇴로 가닥이 잡혔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언론 공지를 통해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19일 밤까지도 몇몇 외부 인사가 윤 대통령에게 “이제 결심을 국민께 알리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두 사람에 대한 조치를 어느 정도 결심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원칙의 관점에서 국민께 사안을 설명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본 것 같다”며 “만약 윤 대통령이 설명도 없이 즉각 조치에 나섰다면 제2, 제3의 정치 공세가 이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가 수사 준비가 안 돼 소환도 못 한 상황에서 이 대사가 국내에서 마냥 대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 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갈등이 총선 참패로 이어질 경우 당정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오는 25일 서울에서 열리는 방산 협력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번 주 귀국하는 이 대사는 공수처에 조속한 소환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이날 여러 차례 “국민의힘은 민심을 따르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안양 관양시장에서 시민들을 만나서는 “일주일 동안 여러분이 많이 걱정하셨을 것 같다. 그것 다 오늘 해결됐다”며 “제가 그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러분께서 그걸 원하셨고, 여러분이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심에 반응하고 민심에 순응하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의 핵심은 민심을 따르는 것이다. 저희는 민심을 따를 것”이라고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한 위원장은 이번 국면에서 여권 분열상 노출을 최대한 회피하면서 사태를 조기에 봉합하기 위해 대통령실 참모들과도 소통을 이어간 것으로 안다”고 했다.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두고 당정 2차 충돌로 비화할 뻔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사태를 봉합하면서 여권은 총선 캠페인 방향 전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물가 등 민생 문제에 대한 해법과 각종 개혁 과제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 여권 지지층 결집과 부동층 견인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다만 여권 일각에선 이 대사가 자진 귀국을 넘어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민의힘 김학용(경기 안성) 경기권역 선대위원장은 당 회의에서 “황 수석 사의가 받아들여져 참으로 다행스럽다”며 “이 대사께서 결단을 내리셔서 국민 오해가 없도록 해주시길 촉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