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광주광역시 동·남을에 출마한 박은식(40) 후보가 당 색깔인 빨간색 점퍼를 입고 지난 20일 광주 동구의 한 경로당에서 웃으며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광주광역시=양지혜 기자

“오메 오메, 인물도 이리 훤칠한디 왜 ‘윤석열당’으로 나온다냐. 의사 양반은 빨리 서울 가서 돈이나 벌어야 쓰겄어.”

4·10 총선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광주광역시 동·남을에 출마한 박은식(40) 후보가 새빨간 점퍼를 입고 지난 20일 광주 동구의 한 경로당을 찾아 인사하자 주민들이 반가움과 탄식을 함께 쏟아냈다. 이 지역구는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 등 5·18민주화운동 역사를 품은 구도심 지역이자 그의 고향이다. 현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호남 몫’ 비례대표 제안을 뿌리치고 고향 출마를 선택했다.

박 후보가 매일 500번쯤 반복하는 자기소개가 있다. “1984년 광주에서 태어나 이 동네 대성초·금남중·문성고 나왔습니다.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 의사를 하다가 고향 발전이 너무 뒤처지는 것 같아 한번 확 바꿔보고자 내려왔습니다. 국민의힘도 한 석 얻으면 민주당과 열심히 경쟁해서 지역에 도움이 되잖아요. 저를 좀 한번 키워주십시오.” 주민들은 “참말로 이 동네 사람이여?” 관심을 보이다가 “아이고 키 크고 젊고 빠지는 게 없는디 왜 2번으로 나온당가”라며 말을 흐렸다.

광주 동·남을의 충장로와 금남로 등은 한때 호남 최대 상권으로 불렸지만, 서구 등지의 대규모 택지 개발과 공공 기관 타 지역 이전 등으로 급속히 쇠락해 이제는 텅 빈 상가들만 줄지어 있다. 인구가 계속 줄고, 노인 인구는 주민의 20%가 넘는 동네다. 거리에 사람이 없어 박 후보는 이발소·철물점·식당·부동산·수퍼 등 가게 문을 일일이 열고 들어가 자기소개를 했다. 어느 미용실 사장이 “그만한 스펙이면 비례대표도 될 것인디 왜 지역에 나왔능가”라고 묻자, 그는 “지역에 출마해야 이렇게 직접 인사드릴 수가 있죠”라며 웃었다.

동네 특성상 지역구 내 179개 있다는 경로당을 최대한 많이 누비는 것이 가장 중요한 표심 훑기 전략이다. 손으로 ‘V’ 자를 그리며 “고향 발전을 위해 이번엔 2번을 뽑아달라”는 손자뻘 후보를 본 어르신들은 “쓸데없는 고생 한다”며 안쓰러워했다.

20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거리에서 국민의힘 박은식 후보가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김영근 기자

그는 당선이 목적이 아니라 ‘득표율 20%’를 위해 뛴다. 지난 총선엔 여당 후보가 없었고, 2016년 총선에선 새누리당 후보가 2.77% 득표에 그치는 등 우파 후보가 선거비 전액 보전(득표율 15% 이상) 기준도 넘긴 적 없는 지역이다. 그는 “어차피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테니, 이번엔 2번도 찍어서 여당 일꾼도 키우자”면서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골목을 누비며 주민들을 만난다. ‘샤이 2번’ 주민들은 네 시간에 한 번꼴로 나타났다. 한 이발소 사장은 “이번에도 물먹겠지만 나는 찍어줄 테니 다음에도 꼭 다시 나와라. 그래야 여기에 발전이 있다”며 “다른 지역에서 ‘전라민국’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 듣기 싫더라”고 박 후보의 등을 토닥였다. 한 수퍼마켓 주인은 “충청도처럼 좀 왔다 갔다 해서 지역 발전을 시켜야지 쓸데없이 자존심 세워봤자 뭐 해. 똑똑하고 야문 사람인 것 같으니 이번엔 내가 찍어드릴게”라고 했다. 한 카페 사장도 “엄청난 용기를 내셨네. 이번에 떨어져도 또 나오셔라. 그 당이 호남 마음을 얻게 계속 노력을 해야 전국 정당다워진다”고 했다. 그의 14시간 유세를 지켜보는 동안 지지 의사를 말해 준 유권자는 이 셋뿐이다.

유권자 열에 여덟은 그가 나눠준 후보 명함을 받기만 하고 말이 없었다. 박 후보는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국민의힘에 대한 호남 정서가 그렇다”고 했다. 둘은 반응했다. “윤석열이고 한동훈이고 다 싫은데” “물가 요새 너무 올라서 꼴 보기 싫은 당인디” “왜 민정당 후신들과 붙어먹냐” 등의 말들이었다. 몇몇은 그에게 직접 전화해 “훌륭한 고교 후배라고 생각했는데 5·18 악마 전두환 놈의 당으로 출마하는 것이 쪽팔리니 당장 학교 이름을 명함에서 지우라”고 요구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5·18이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게 특별법까지 만들었고 하나회도 척결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그 후예들이 주축”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그는 “발로 뛰며 선거운동을 해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라는 걸 배웠다”고 했다. “제가 소위 ‘이념’ 문제에 적극 목소리를 내왔지만, 현장을 겪어보니 상권이 다 죽어가는 마당에 ‘빨갱이 타령’ 같은 건 부질없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여당이 고전하고 있는 것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코스트코와 이케아를 고향에 유치시켜서 상권을 살리는 게 최대 공약입니다.” 그가 건넨 명함을 한 시민이 받더니 바닥에 버렸지만, 그는 “바닥에 있는 명함도 그 자체로 홍보가 된다”며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