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후보인 조수진 변호사의 성범죄 가해자 변호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여성계에선 “공천 취소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인권 변호사’ ‘민생 운동’을 경력으로 내세운 조 변호사가 실제론 반인권적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조 변호사는 지난해 초등 4학년 여아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성병에 걸리게 한 태권도 관장을 변호했다. 피해 여아는 산부인과에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증’ ‘생식기 사마귀’ ‘자궁경부 이형성’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조 변호사는 피해자가 다른 사람과의 성관계 사실을 은폐하려 가해자를 무고하고 있다며 “아버지 등 다른 성인에게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남자 친구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피해자의 소셜미디어도 증거로 제출했다. 피해자가 상상을 현실로 인식하는 정신병의 일종인 ‘작화증’을 앓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모습도 보였다. 법원은 가해자 측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조 변호사는 이 사건을 상고해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 10년 형을 확정했다. 피해자 측 국선 전담 변호사는 “피해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2차 가해”라고 했다.
조 변호사는 2022년 30대 여성 환자를 성추행한 한의사를 변호하면서 피해자에게 “피해자답지 않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당시 가해자가 피해자를 진료하다가 속옷 아래로 손을 넣어 중요 부위를 만지는 추행을 했는데, 조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항의하거나 간호사 등에게 알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일반적인 성추행 피해자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행동 양식이 존재한다거나 그것이 부족하다고 하여 그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단정해선 아니 된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지난해에는 남성 2명이 고교 동창을 집단 강간한 사건에서 조 변호사는 “(가해자들이) 술에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한 명이 성관계를 끝내고 다른 한 명이 들어와 유사 성행위를 요구했다. 동시에 하지 않았으니 각각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집단 성폭행 시 적용되는 가중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특수 강간 유죄를 선고했다.
조 변호사가 성범죄 혐의자에게 ‘강간 통념’을 적극 활용하라고 홍보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강간 통념이 성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라 국민참여재판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배심원의 판결을 통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증거 자료와 상황이 있다면 이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일반인들이 배심원으로 있는 국민참여재판에서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의 강간 통념을 주장하면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날 성명을 내고 “성폭행 피해 아동에 대해 법을 가장한 2차 가해를 서슴없이 자행한 조 변호사의 공천을 즉각 철회하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할 수는 있지만, 초등학생이 강간 피해를 당했는데 아버지가 그랬을 수 있단 식으로 변호를 하는 경우는 상식적으로 없다”며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던 행동들이 저 당에선 용인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조 변호사는 이날 강북을 지역에 전입신고를 해 4·10 총선에서 지역구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됐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인 명부는 국회의원 선거일 22일 전(3월 19일)을 기준으로 작성하는데, 조 후보가 경선 결과가 확정된(19일) 뒤로 전입신고를 미룬 탓에 투표권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방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지금은 얻어맞고 있지만, 좀 있으면 지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간 통념(rape myth)
’여성이 거절 의사를 보여도 실제로는 성관계를 원하고 있다’ ‘여성이 남자 집에 가는 것은 관계를 허락한다는 의미’ 같은 잘못된 관념을 뜻한다. 가해자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피해자를 탓하게 만들어 ‘2차 피해’를 일으킨다는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