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부터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사전 투표일(4월 5~6일)을 감안하면 사실상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22대 총선은 야당의 ‘정권 심판론’과 여당의 ‘거야(巨野) 심판론’ 그리고 제3세력의 ‘대안론’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선의 흐름은 정책·공약·인물은 뒷전으로 밀리고, 여야가 상대방을 향한 극단적 혐오를 조장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여당은 야당 대표들의 사법 리스크를 강조하며 ‘혐오 대 혐오’의 선거 구도가 형성됐다.

이재명, 한동훈 /뉴시스·연합뉴스

후보 등록 마감 결과 지역구는 254개 선거구에 699명, 46석의 비례대표 선거에는 38개 정당에서 253명이 등록했으나 정당의 검증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지역구 후보자의 34.6%가 전과자이며 횡령, 사기, 상습 체불 등 죄질이 나쁜 경우도 적지 않다. 비례대표 후보도 4명 중 1명꼴로 전과자이며 조국혁신당은 당선권 10번 내에 3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22대 총선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열 번째로 치러지는 총선이지만 민주주의 내용과 형식 모두 뒷걸음질 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는 “정치가 팬덤화되고 진영 간 갈라치기가 고착화되면서 혐오 공격이 전보다 잦은 빈도로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워낙 여러 논란에 휩싸여 웬만한 논란엔 타격을 입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처럼, 한국의 정치인들도 국민의 기대를 아예 낮추어 버려 후보들의 문제점이 쟁점으로 부각이 잘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외국 정치학 교과서에 실릴 법한 ‘나쁜 사례’들이 단기간에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고 했다.

국회의원선거 재외 국민투표가 27일 시작된 가운데 재일교포인 94세 이두치(사진 왼쪽) 할머니가 일본 도쿄 총영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해 위성정당의 출현이 예견됐는데도 여야가 별다른 수정 노력을 하지 않아 이번 총선에서도 민주적 선거제도가 크게 훼손됐다고 평했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민주당 주도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 난립 등 여러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해 반드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민주당은 법을 고치지 않았다. 그 결과 22대 총선엔 지난 총선보다 3개 늘어난 38개의 비례 정당이 난립하게 됐고, 유권자들은 51.7cm에 달하는 역대 최장의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아들게 됐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현역 의원들을 편법으로 제명시켜 위성정당에 이적시키는 꼼수로 총 60억원에 가까운 선거 보조금을 타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통해 야권의 ‘정권 심판론’ 대신 ‘한동훈 대 이재명’이라는 프레임 변화를 시도했다. 현재 권력 대신 미래 권력에 대한 선택으로 총선을 끌어가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과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문제 등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정국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정권 심판론’에 다시 불을 붙였다. 반면 민주당은 공천 초기 ‘비명횡사 친명횡재’로 불리는 공천 파동으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지만, 대통령이 촉발시킨 정권 심판론과 조국혁신당 돌풍으로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태곤 더모아정치분석실장은 “증시 상승이나 수출 호조와 같은 호재는 유권자들의 주목을 못 받고, ‘대통령이 대파 값이 얼마랬더라’처럼 발화자가 대통령인 사안들만 악재로 주목받는 상황”이라며 “국민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도 좀처럼 반성과 물러남을 보이지 않는 대통령의 국정 태도가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었던 조국 전 장관마저 정치적으로 부활시킨 셈”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남은 3년이 대통령과 국회가 매일 대치하며 싸우고 청문회와 국정조사, 탄핵 등이 자주 거론되는 광경으로 채워질지, 아니면 현 정부가 출범 당시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정책들이 ‘여소야대’의 굴레를 벗고 추진력을 얻게 될지 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수 교수는 “여당이 의미 있는 의석을 얻는다면 현 정부가 재평가받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야당이 압승하면 향후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앞으로 선거 판세가 변할 여지가 있다”며 “상대적으로 여론조사에 소극적인 보수와 중도층의 투표율이 관건”이라고 했다.

야권의 절대 우세 판세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윤태곤 실장은 “현재 판세상 야당 우위가 명백하지만, ‘이재명한테 이렇게까지 힘을 실어줘도 되나’라는 염려의 목소리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선거 막판엔 여당이 추격을 좀 할 것 같다. 특히 영남권에선 지지세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권 200석’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보수층이 결집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야권이 절대적 다수 의석을 확보한다면 총선 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에 ‘내 덕에 이겼다’ 식의 향후 주도권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여권은 ‘네 탓에 졌다’는 책임론 공방에 휩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의 판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