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김준혁 경기 수원정 후보의 ‘이화여대생 미군 성 상납’ 발언 논란과 관련해 “역사적 진실에 눈감지 말아야”라는 글을 썼다가 삭제했다. 그동안 이 논란에 침묵해 온 이 대표가 사실상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이런 내용과 함께 ‘김준혁 논란의 대반전! 나의 이모는 김활란의 제물로 미군에 바쳐졌다는 증언 터졌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유했다. 이 영상엔 자신을 이대 출신이라 주장한 여성 10여 명이 “김활란의 친일·반여성 행위를 심판하자” “김준혁 후보와 민주당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 기자회견이 담겼다.
이 기자회견에서 고은광순씨는 “어렸을 적 가족 앨범에서 이모가 잔디밭에 미군과 함께 앉아있는 사진을 봤다”며 “그 옆엔 이모뿐 아니라 여대생들이 미군들과 커플이 돼서 아마 집단 미팅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사진이었다”고 했다. 이어 “최근 이 문제(김준혁 논란)가 불거지면서 가족들에게 이모에 대해 물었더니, 이모가 1935년생으로 정치외교학과를 다녔고, 1948년 무렵 낙랑클럽 그 당시 김활란에게 걸렸구나 하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고 했다. 고은광순씨는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을 지낸 이력이 있다. 지난 대선을 앞둔 2021년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떡열아 용감하더라. 그러니 쥴리랑 사는 거겠지”라고 써 논란이 됐었다.
이 기자회견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주권당 서울 용산구 후보로 나섰다가 사퇴한 구산하씨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씨는 친북 단체인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선전위원장으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활동을 하며 미 대사관 담을 넘다가 경찰에 연행된 이력이 있다. 야권 성향 유튜버들은 이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김활란이 이대생을 미군에 제물로 바쳤다’며 홍보했고, 이 중 하나를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유튜브에 공유한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고은광순씨 주장대로라면 35년생 이모는 낙랑클럽이 있었던 48~52년도에 10대인데 앞뒤가 안 맞고, 주장의 근거도 허술한 것 같다”며 “이 대표가 김준혁 후보를 감싸려고 허무맹랑한 주장에 동조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 측은 “실무진 실수로 올라간 글이라 삭제했다”고 밝혔다.
김준혁·양문석(경기 안산갑) 후보의 각종 논란에 고개 숙였던 민주당은 “김활란은 친일이 맞지 않냐” “(양 후보 편법 대출을 조사한) 금감원을 손봐야 한다”며 공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두 후보 논란이 총선 판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서자, 정부·여당 쪽으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김민석 총선상황실장은 8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미 두 분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렸다”며 “사실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의 친일 행적에 대해 역사적인 따가운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딸 명의로 11억원 편법 대출을 받은 양문석 후보에 대해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통례와 규정을 넘어선 일종의 정치적 개입을 하면서 오히려 문제를 정치화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해찬 상임공동선대위원장도 이날 선대위에서 “이번 선거가 끝나고 금감원은 단단히 제재를 가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태세 전환을 한 것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두 후보 논란 초반엔 수도권에서 살짝 흔들리는 조짐이 있었으나, 정권 심판 분위기가 워낙 강해서 현재 구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그러나 두 후보를 향한 사퇴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퇴계 이황의 후손인 퇴계14손 이정원씨는 이날 김준혁 후보의 ‘이황은 성관계의 지존’ 주장에 대해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표는 김 후보의 공천을 취소하라”고 했다. 김 후보는 2022년 출간한 책에서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해 “성관계 방면의 지존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승된 설화를 보면 퇴계 이황의 앞마당에 있는 은행나무가 밤마다 흔들렸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에 대해선 “몸매가 장난이 아니다. 숙종은 볼륨감 넘치는 숙빈 최씨 몸매를 보고 마음이 동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양문석 후보는 서울 잠원동 아파트 가격을 선관위에 축소 신고했다는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로 경기 안산 상록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됐다. 양 후보는 잠원동 아파트를 공시가격인 21억5600만원으로 신고했는데, 2020년 8월 당시 실제 매입가는 31억2000만원이었다. 공직자윤리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공시가격과 실제 거래 가격 중엔 높은 가격으로 신고해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경기 지역 유세에서 “투표를 이틀 남겨놓은 지금 정치인들은 여러분이 하라면 양잿물도 마실 때다. 그런 예민한 시기에도 (민주당은) 김준혁, 양문석 같은 사람을 오케이라고 하는 정치 세력”이라며 “선거가 끝나면 여러분의 선택이라고 참칭하고 다니며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