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지상파 3사 출구 조사에서 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석열 정부 5년 내내 여소야대가 될 판이다. 남은 3년을 어떡하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때부터 여소야대로 임기를 시작하면서 ‘여성가족부 폐지’ 등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정부조직법 처리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등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을 막으려고 재의요구권(거부권)을 9차례 행사했지만, 그 사이 여야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이번 총선으로 새로 구성되는 22대 국회에서도 여소야대에서 비롯된 여야 대치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절대적인 숫자 부족으로 입법권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당이 되도록 정풍(整風)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정부·여당이 당 자체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없고, 총선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쥘 수도 없어 야당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이대로라면 역대 가장 무기력한 여당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이를 해결할 방법도 없다”고 했다. 지난 총선 기간 발표한 각종 정책도 공수표가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당직자는 “힘도 빠지고, 공약을 못 지켜 신뢰까지 까먹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며 “지금으로선 어떤 반전 카드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태경 의원은 통화에서 “남은 3년 동안 윤 대통령은 방어적 행정을 할 수밖에 없다”며 “여론전을 잘해서 어떻게든 악법은 통과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 의원은 “선거 때만 중도·청년 외연 확장을 얘기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당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면서도 “대통령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당이 주도권을 잡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선 여당 내에서 본격적으로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 과정에서 당내에서 쇄신 움직임이 나온 것을 주목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원내와 원외를 중심으로 과거 2000년대 초 미래연대와 같은 쇄신파, 소장파 모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 2001년 만들어진 미래연대는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등 이른바 ‘남원정’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관여하면서 여권 쇄신의 중심에 섰고, 이후 정권 교체 과정에서 중도층을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당도 윤석열 정부와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는 독단적으로 가지 않고 야당과 소통하고 화합하면서 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여당에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이 ‘민심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출구를 찾아볼 수 있겠지만, 가만히 있으면서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이렇게 나온다면 굉장히 절망적일 것”이라고 했다.
인천 동·미추홀 윤상현 후보는 출구 조사 발표 직후 본지 통화에서 “이제부터라도 영남 중심에서 벗어나 수도권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당대표와 원내대표 등 지도부도 수도권 인사들로 구성하고 수도권에 소구할 수 있는 비전과 정책, 이미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여야 중진 협의체도 만들어서 그간 실종됐던 정치의 기능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했다.